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로 인한 중국의 경제보복이 시작된 지 어느새 1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국내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실제로 산업현장에서 뛰고 있는 한·중 오피니언 리더 상당수는 중국의 경제보복이 적어도 1년 이상 지속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포춘코리아 10월호 설문조사 참조).
그렇다면 중국의 경제보복은 국내 기업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타격을 입혔을까? 이 같은 위기를 슬기롭게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한국의 대(對) 중국 수출 규모는 1,244억 3,000만 달러(약 140조 원)였다. 이는 한국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규모다. 홍콩을 경유하는 대중 무역을 합치면 그 비율은 30%대로 올라간다. 수치만 봐도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중국이 한·미 간 사드 배치가 논의된 순간부터 경제 보복으로 몽니를 부리고 있다. 물론 수치만 놓고 보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아직 공식적인 집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실제 대중 수출 규모가 급격한 감소세를 기록했을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일각에선 대중수출이 오히려 증가했을 것이란 의견도 내놓고 있다.
김유정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말한다.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 바로 한국경제에 대한 중국경제의 의존도입니다. 한국에게 중국이 중요한 시장인 만큼, 중국 기업들도 한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합니다. 특히 IT·가전 제조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중국 업체 대다수가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포함해 많은 소재부품을 한국 제조사 물량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중 수출액의 70% 이상이 반도체 등 소재부품에서 발생하고 있거든요. 중국 경기 활성화에 따라 반도체·소재부품을 중심으로 한 수출 증가세도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모두 수치 변화만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전체 한국 관광객의 50%에 육박하는 중국 관광객의 급감은 관광업계를 넘어 전반적인 시장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과 현지 체류 기업인, 교민들은 경제적 타격 외에도 과격한 반한(反韓)시위로 인한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
본격적인 피해는 지금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보이지 않았던 타격이 수면 위로 떠오를 시점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향후 1~2년 간 대중 수출 규모는 최저 3%에서 최대 7%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중국인 관광객 감소가 겹치면, 최악의 경우 약 16조 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경제보복에 우는 기업들
포춘코리아는 지난 10월 호 ‘한·중 오피니언 리더 40인에게 듣는 사드 해법’이라는 설문조사 기사를 통해 양국 리더들이 체감하는 사드 경제보복의 수준과 그들이 생각하는 해결 방안을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조사에서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중국 사드 경제보복의 실체에 대한 양국 리더들의 의견이 엇갈렸다는 점이었다. 한국 측 응답자의 90%는 ‘경제보복이 실존한다’고 답한 반면, 중국 측 응답자 중 경제보복의 실체를 인정한 사람은 30%에 불과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보복이 실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 경제보복의 흐름을 분석한 최용민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구체적으로 상품 무역, 내수영업, 콘텐츠 및 서비스무역, 민간교류 등 대다수 대중 교류에서 악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K-뷰티 영향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산 화장품을 포함해 일부 소비재에서 예상치 못한 통관 지연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었죠. 사소한 문제를 트집 잡아 통관검사 불합격 조치를 내리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주요 국내 유통 마트들은 세무조사, 영업정지 같은 다양한 방법의 업무방해 때문에 문을 닫거나 시장 철수를 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 밖에도 여행 금지, 항공편 축소 등 민간교류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2016년 7월 사드 배치 결정이 공식 발표된 이후, 중국은 줄곧 사드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리고 상황이 한 단계씩 진척될 때마다, 경제보복 조치를 조금씩 강화해왔다. 물론 공식적으론 여전히 ‘정부 차원의 경제보복은 없다’고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 예술, 관광분야를 중심으로 시작된 중국정부의 조치가 경제적 피해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눈으로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자. 2016년 10월 한국 관광객 20% 감축 지시에 이어 2016년 11월에는 중국에서 잘나가던 롯데마트를 대상으로 불시 소방점검이 실시됐다. 이후 한국 전세기 운항 불허(2016년 12월), 한국산 화장품 수입 불허(2017년 1월) 같은 조치들이 이어졌다. 경북 성주 골프장을 사드 배치부지로 제공하는 롯데그룹의 결정이 나오자, 급기야 롯데마트 4곳이 소방법 위반으로 영업정지를 당했다. 통일연구원은 사드 배치 결정 시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중국 기업 및 기관에서 일방적으로 취소 혹은 무산시킨 한국과의 경제협력 건수는 약 50여 건이며, 이중 절반 이상은 ‘사드 보복’ 조치의 일환인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현재 해결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해결 방안을 찾는 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이는 곳은 역시 롯데마트다. 지난 10월 중순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롯데마트 피해 현황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롯데마트의 중국 내 매출은 4,100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4.7%나 급감했다. 영업손실은 1,450억 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800억 원이나 급증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롯데마트의 중국 매출은 작년보다 1조2,250억 원 줄어든 4,500억 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롯데마트는 중국 내 점포 99개 중 90%에 가까운 87개의 문을 닫고, 12곳만 정상영업을 하고 있다. 이마저도 언제 영업을 멈춰야 할 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는 게 롯데마트 측 설명이다.
물론 롯데마트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영업 정상화에 대비해 지난 1년간 문자 그대로 ‘버티기 전략’을 펼쳐왔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비용을 지출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에만 매장 유지·관리, 직원 임금 비용에 1조 원 가까운 돈을 수혈했지만 별다른 탈출구는 여전히 보이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현재 롯데마트는 매각주관사로 골드만삭스를 선정하고 중국 내 점포들의 매각절차를 밟고 있다. 사실상 중국 경제보복 조치에 백기를 든 상황이다.
국내 업계도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관광업계의 피해가 가장 눈에 띈다. 중국 관광객 감소는 관광시장을 넘어 한국 내수시장 전반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역시 ‘요우커’가 갖고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잘 알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중국의 경제보복이 처음 시작된 곳이 ‘관광시장’이었다.
그 밖에도 한류 바람을 타고 성장하던 엔터테인먼트·문화 콘텐츠 분야가 이른바 ‘한한령(限韓令·한국 제작 콘텐츠 또는 한국 연예인 출연분의 중국 송출을 금지하는 규제)’의 직격탄을 맞으며 신음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해결방안을 찾을 길이 막막하다는 점이다.
김유정 애널리스트는 말한다. “자국의 산업 성장이나 고용과 연계되어 있는 디스플레이, 반도체, IT 소재부품 분야에선 앞으로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중국 현지 기업이 수입·판매량을 조절할 수 있는 철강, 화학, 자동차 같은 분야는 상황이 다릅니다. 국내 기업이나 정부가 찾을 수 있는 대안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드 철수만이 해답’이라고 말하는 중국 정부에겐 어떠한 논리도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업계에선 최근 열린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 대회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다소 완화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벌어진 중·일 간 센카쿠열도 분쟁 때도 당 대회 이후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과 반일 시위가 완화됐거든요.”
중국시장 이해하는 계기 삼아야
지난달 한중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포춘코리아 설문조사(총 14개 문항으로 구성)에선 유독 극명하게 의견이 엇갈리는 문항이 하나 있었다. 중국의 경제 제재 종식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묻는 문항이었다. 한국 응답자의 80%는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중국 응답자의 약 70%는 ‘한국 내 사드배치 우선 철수’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한국 기업들의 독자적인 현지화 노력’이 가장 적은 응답 수(한국 1명, 중국 1명)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중국의 경제보복이 시작된 이후, 일각에선 오히려 이번 상황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 상당수가 거대한 중국시장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중국통’으로 잘 알려진 김용준 성균관대학교 중국대학원장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겸손하고 정감 있는 자세로 중국시장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필요했다”며 “이번 이슈가 한국 기업의 현지화를 가속화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롯데마트도 이 같은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보복이 본격화된 올 초부터 중국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국내 점포와 중국 현지 매장 입구에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因爲理解 所以等待)’라는 중국인에 마음에 호소하는 글을 붙여놓았다. 중국 내 롯데마트 법인장을 모두 중국인으로 교체하며 적극적인 현지화를 밀어붙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오리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 심지어 중국기업으로 인식하는 소비자가 상당수일 정도로 현지화에 성공한 기업이 바로 ‘오리온’이다. 실제로 오리온은 중국 현지 법인을 중국회사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조직 문화, 슬로건, 인력 구성을 철저히 중국화했다. 또 ‘정(情)’이라는 단어를 앞세운 초코파이의 마케팅 포인트도 중국에선 ‘인(仁)’으로 바꿔 중국인들의 감성에 접근했다. 초코파이를 포함해 각종 스낵류를 중국인 입맛에 맞게 변형해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 결과 오리온은 중국에 진출한 국내 식품업체 중 최초로 ‘매출 1조 원 달성’이라는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다.
다행스러운 건 몇몇 기업들을 중심으로 사드 보복 조치를 또 다른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 9월 중국시장 전략 모델 ‘올 뉴 루이나’를 선보이며 사드 보복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앞으로도 꾸준히 현지화 전략 모델을 선보여 꺾이고 있는 중국 매출을 반등시킨다는 계획이다. 중국 시장 공략을 지속해나간다는 방침이다. CJ CGV의 경우,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영화가 대부분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것에 착안해 음향과 시야 몰입도를 극대화한 4DX관을 중심으로 영화관을 재구성했다. 이 같은 전략은 중국 영화시장의 부흥을 등에 업고 매출 신장이라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아예 중국시장을 벗어나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높은 중국 의존도에서 벗어나 성장잠재력이 높은 동남아시아 지역을 공략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주요 국가는 한국기업의 현지 진출을 적극 유도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해부터 외국인 소유를 제한했던 35개 산업에 대해 외국인 100% 지분 보유를 허가했고, 법인세도 기존 25%에서 17%로 인하했다. 베트남도 각종 세제 혜택과 동남아 지역의 ‘전진기지’라는 지리적 이점을 앞세워 국내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제보복이 적어도 1년 이상 계속될 것이라 관측하고 있다. 지난달 소개한 포춘코리아의 설문조사에서도 한중 오피니언 리더 40인 중 약 20%는 3년 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은 당분간 이어질 이 같은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저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