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혁신전략을 추진하는 가운데 핵심인 의료서비스 시장 개혁은 빠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민단체와 의료계의 반발 때문인데 이대로라면 서비스산업 혁신전략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4일 일자리위원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서비스산업 혁신전략에 원격진료와 투자개방형 병원, 정밀의료 같은 주요 의료서비스 시장 발전안을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는 민감한 부분은 모두 빼는 대신 가천대에서 운영하고 있는 인공지능(AI) 왓슨을 이용한 진단사업을 의료보험에 넣는 방안 정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환자 유치 확대와 의료기관의 해외진출처럼 논란의 소지가 적은 부분도 추진 대상이다. 원격진료와 주식회사처럼 주식을 사고팔 수 있는 투자개방형 병원, 자회사 설립을 통한 토털케어 서비스 제공 등 사실상 의료 분야의 핵심이 모두 제외되는 셈이다. 의료민영화를 위한 것이라는 시민단체와 의료계의 주장을 감안한 것이다.
이와 별도로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생명윤리법 개정을 통해 체세포 유전자 치료 연구범위 확대와 배아·생식세포 등에 대한 유전자 치료 기초연구 허용 등을 추진 중이지만 청와대를 포함한 전체적인 정책기조는 규제 완화가 어려운 분위기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서비스산업 대책에 의료 부문은 사실상 빠진다고 보면 된다”며 “과거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문제 등으로 기재부가 주축이 돼 의료서비스 대책을 내놓는 것에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크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서비스산업 혁신전략에서 의료 분야가 빠지면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밀의료만 해도 맞춤형 진단과 치료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아낄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문재인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이 실시되면 오는 2019년부터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 전환되고 2026년에는 적립금이 고갈될 수 있다고 봤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는 서비스산업 대책에 의료가 포함되면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매우 꺼리고 있다”며 “서비스산업발전법에서도 의료 부문은 모두 빠지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서비스사업 혁신전략 발표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서비스산업 육성은 혁신성장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인데 처음부터 맹탕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기재부는 서비스산업 전략을 11월 중 내놓기로 했지만 현재로서는 오리무중이다.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외환위기 20년 동안 서비스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그렇게 말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이룬 게 없다”며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에 의지가 있다면 의료산업부터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가 빠진 서비스산업 대책에는 교육산업 육성안이 들어갈 예정이다. 쌍방향 학습을 뜻하는 에듀테크 산업을 키워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고 수출산업 가운데 하나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교육과 정보통신기술(ICT)이 연계된 에듀테크의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13년 902억달러에서 2020년 2,299억달러로 연평균 14.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에듀테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교별로 학습자료에 대한 재량권이 있어야 하고 교육청 등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 많다”며 “이런 것을 어떻게 풀 수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 법률시장에 AI를 접목하는 서비스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어 AI가 과거 판례를 검색해 제공하는 서비스를 더 늘리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 경우 법률사무소를 찾기 전에 1차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법무법인 입장에서도 질 높은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 서비스산업 대책은 모든 분야를 아우르기보다는 몇 가지만 하게 될 것”이라며 “정확한 발표 시점과 구체적인 포함 내용은 아직 검토하고 있으며 정해진 게 없다”고 설명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