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세계 80위였다. 81위는 우간다, 79위는 말라위였다. 그다음 해에는 87위를 기록했는데 86등이 부탄이었다. 아프리카만도 못한 금융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 그때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 중 하나는 순위평가에서 중소 벤처기업인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그대로 반영됐다는 점이었다. ‘대출의 용이성’ 항목에 대한 우리 기업인들의 평가가 너무 박하다 보니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나쁜 점수가 나오면서 순위가 밀렸다. 경쟁력 평가라기보다는 고객만족도 조사에 가까웠던 셈이다.
당시의 평가가 주관적이기는 했지만 사실 우리 금융산업은 경제 내에서 그리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금융산업은 대표적 내수산업이고 상시감독을 받는 규제산업이다. 게다가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산업이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됐다는 점에서 위기촉발 산업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지금 내수시장은 포화돼 레드오션이 되고 있다. 금융 서비스의 수요자는 전 국민이고 공급자는 소수다. 금융위기 이후 규제는 더욱 심해지고 이제 금융감독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규제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우리 경제 내에서 무형의 서비스는 대개 중국집 군만두 취급을 받는다. “서비스로 드리는 것”이라고 할 때 사용되는 ‘서비스’라는 단어는 공짜라는 의미인데 금융 ‘서비스’라는 말에 들어 있다. 웬만한 서비스는 공짜 혹은 아주 싼 것으로 느끼도록 돼 있는 와중에서 무형의 서비스에 대한 대가는 매우 박하다. 우리 금융산업에서 수수료 중심의 비이자수익 비율은 이자수익에 비해 훨씬 낮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힘든 금융산업에 대해 정부는 최근 모험자본 육성, 소비자 보호, 서민 및 중소기업 지원에다 부채탕감을 주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금융산업 경쟁력 제고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이러다 보니 금융산업에 대한 산업정책이 부재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산업을 둘러싼 상황은 점점 더 악화하는 느낌이다.
최근 금융권에 낙하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정권교체기에 으레 나올 법한 논란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엄중하다. 저성장 고령화 시대가 도래하고 엄청난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영업 대출이 600조원에 육박하고 부동산 문제도 은행 대출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런가 하면 4차 산업혁명의 일부인 핀테크 혁명의 흐름에 잘 올라타고 새로운 금융을 준비해야 하는 과제도 만만치 않다. 상황이 이렇기에 만일 은행 경영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 경제는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어려울수록 정부는 금융기관 경영의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경영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는 최고의 인사가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엄중한 상황에서 낙하산이니 지역 연고니 하는 얘기들은 사치에 가깝다. 노조도 영향력을 키우려는 집단이기주의보다 대승적 차원에서 은행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합해야 한다. 물론 최근 불거지는 채용비리 논란도 문제이고 은행의 환골탈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채용비리는 거꾸로 보면 외압에 약할 수밖에 없는 은행의 현실을 보여준다. 섣불리 개입하려 하기보다는 그럴수록 은행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포세이돈 어드벤처’라는 영화를 보면 흥미로운 대사가 나온다. 배가 사고를 당하고 어려움에 처하자 주인공인 목사는 신을 향해 외친다. “도와주지는 못해도 방해는 하지 마십시오.”
현 상황에서는 금융권에 대한 산업정책을 화끈하게 시행하지 못하더라도 낙하산 인사 배제 등으로 경쟁력 제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좋은 금융산업 정책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