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다렸던 판결이 났다. 얼마나 마음 졸이며 기다린 판결이었는가. 그런데 차라리 판결이 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히고 임신·출산까지 시킨 연예기획사 대표 가해자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지난 2012년 형사 고소돼 2014년 1심에서 12년 중형, 2심 9년,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다시 환송심에서 무죄, 검찰의 재상고로 다시 대법원까지. 하나의 사건으로 무려 다섯 번이나 재판을 받았지만 결과는 무죄로 끝났다. 재판부는 피해 여학생이 보낸 문자 메시지와 접견시 나눈 대화를 근거로 ‘사랑해서’ 성관계를 가졌다고 판단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사실인가. 피해 학생의 행동의 원인과 심리적 특성, 판단 능력을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봤어야 했다.
수개월 전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엽기적인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경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6학년 남학생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혔고 전북의 한 아동센터에서 근무하는 교사는 초등 여학생을 강간하고 임신까지 하게 했다. 성폭력 가해 어른들은 모두 똑같이 반응했다. ‘서로 좋아서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18세 미만 아동은 상황 판단력이나 자기표현 능력이 부족할 수 있어 성인이 되기까지 청소년 성 보호법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받는다. 그런데 어른이 한 성폭력에 대해 ‘아이도 원했으니까, 서로 좋아서 했다’는 논리가 수용된다면 우리 사회는 아동 성 보호라는 기본 가치가 정립돼 있지 않은 것이다. 아동이 만약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다양하게 살펴야 한다. 그것이 아동 성 보호를 위한 시작이다. 가해자 어른들은 아동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오히려 아동의 취약함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다. 아동은 어른의 성관계 대상이 아니다. 만약 피해 아동이 성폭력 상황에서 가해자의 성적 행위에 동의하는 말과 태도를 보였다고 하더라도 어른으로 올바른 판단을 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해자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이 어른이라면 아동이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3초 안에 옷을 입혀줘야 했다.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것이 어른으로 해야 할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