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전투복이 바뀐다. 육군은 전투복의 디자인과 색상뿐 아니라 기능까지 완전히 바꾼 신형 전투복을 이르면 오는 2019년 하반기부터 보급할 계획이다. 최전방이나 일부 특수부대에만 지급되던 전투용 안경 및 장갑, 무릎과 팔꿈치보호대 같은 장구류는 물론 야간투시경(290만원)과 주야간조준경(65만원) 등 고가 광학장비까지 기본 보급품목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계획대로 2023년까지 전투복 및 장구류 개선이 완료될 경우 병사들의 전투력과 생존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육군은 이 계획에 ‘워리어플랫폼’이라는 프로젝트 명칭을 부여하고 최우선 사업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군의 이 같은 중기 프로젝트는 지난 1948년 창군 이래 69년 동안 이어져온 개인 전투 시스템의 일대 변혁을 의미한다. 지금껏 전투복은 단순한 소모성 물자였지만 앞으로는 각종 부수장비와 연동되는 장비 또는 시스템으로 변모하는 첫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행되려면 약 1조원의 사업비가 필요해 예산 확보가 최대 관건으로 손꼽힌다. 광학장비와 방탄장비·방독면·소총 가격만도 500만원에 이른다. 신형 전투복도 이전보다 기능이 좋아져 약 2배 비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플레이션 요인까지 감안하면 향후 6년 동안 연간 2,000억원씩 추가 소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전투복 왜 바꾸나= 현행 디지털 무늬 전투복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장 패턴과 색상·디자인은 어떤 외국 군대의 전투복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바꾸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먼저 현행 전투복의 재질이 문제로 지목됐다. 뻣뻣한데다 습기를 쉽게 먹어 무거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 한반도의 작전환경이 변했다. 현행 전투복 개발 당시에는 ‘화강암이 많은 산악지형’이 국토의 70% 이상을 점유했으나 급속한 도시화로 이 비율이 60%대 중반 이하로 떨어졌다. 세 번째, 어떠한 전투환경에서도 만능인 전투복(all in one)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미 육군 나틱(Natick) 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연구를 통해 연달아 나왔다.
◇부대 및 임무에 따라 4종류 개발=개선 포인트 역시 크게 세 가지. 우선 소재가 폴리에스테르와 레이온 합성섬유로 바뀐다. 부드럽고 통기성이 좋아 땀에 무거워지고 여름에는 더위에, 겨울에는 추위에 약한 단점이 보완될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 변화한 한반도 지형에 적응하기 위해 색상과 패턴이 바뀐다. 흙과 침엽수, 수풀, 나무줄기, 목탄을 디지털 형식으로 바꾼 디자인에 두 가지 요소가 추가된다.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이나 태백산맥, 고구려 삼족오(三足烏) 문양이 지형에 맞게 변형될 것으로 알려졌다. 세 번째, 부대별 특성과 임무에 따라 다른 전투복이 보급된다. 보병용 기본 전투복 외에 특수전 병력용 전투복, 궤도차량 승무원복, 항공조종복이 별도의 디자인으로 개발된다. 다만 위장 패턴은 동일하다. 육군은 난연소재(화염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소재) 원단 사용도 검토하고 있다. 가격이 현재 원단보다 3배가량 비싼 이런 원단을 고려한다는 것 자체가 신형 전투복 개발의 최대 주안점이 병사들의 생존성 보호에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2019년 하반기 시범 착용=육군은 이미 개발일정에 들어갔다. 이달 말 아이디어 공모전 당선작이 발표될 예정이다. 패턴과 디자인이 내년 상반기 안에 확정되는 등 개발 속도가 어느 때보다 빠른 편이다. 민간연구소 전문인력에게 용역연구를 주고 기다리던 이전과 달리 외부용역과 군 자체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육군은 각종 시험평가를 거쳐 이르면 2019년 하반기, 늦어도 2020년 상반기에는 신형 전투복을 보급할 계획이다.
◇창군 이래 다섯 번째 전투복 교체=육군의 이번 전투복 교체는 크게 보면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1948년 창군 직후부터 1953년까지 일본군과 미군 군복을 혼용했다. 1954년에야 군복이 통일되고 1965년에는 명칭이 작업복에서 전투복으로 변경됐다. 1990년까지 주머니 형태와 옷깃, 착용 방식의 세부 변화가 있었으나 공통점은 국방색 민무늬였다는 점. 월남 파병부대와 대통령 경호부대, 해병대와 육군 기갑병과가 위장복을 일부 채용했어도 1954년부터 1990년까지 36년간은 국방색 민무늬 전투복 시대였다. 1991년 전군이 얼룩무늬 전투복을 착용한 데 이어 2011년부터는 디지털 무늬 전투복으로 바뀌었다. 2020년 보급될 신형 전투복은 약 3년간 혼용기간을 거칠 예정이다.
◇베레모의 운명은? 전용 대신 전투모와 혼용=전투모도 바뀐다. 창군 초기부터 1970년까지는 원통형 작업모를 썼다. 1971년부터 1983년까지는 원통형의 앞부분에 곡선으로 처리한 작업모가, 1984년부터는 야구모자 형태의 작업모가 16년간 사용됐다. 2011년부터 보급된 베레모는 적지 않은 불만을 샀다. 머리에 땀이 차고 햇볕을 차단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개선책이 시행될 예정이다. 휴가나 정규행사에서는 베레모를 착용하되 평상시에는 작업모를 쓰는 혼용 방식이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된다. 다만 작업모의 디자인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전군으로 확산될 듯=육군뿐 아니라 해군에서도 전투복 교체가 검토되고 있다. 바다 색상이 들어간 신형 함상복으로 바뀔 예정이다. 해병대는 ‘개인전투 체계 발전’이라는 프로젝트하에 전투복을 포함한 개인장구류 확충을 중장기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상륙작전이 많은 해병대의 특성상 전투복과 장비의 경량화와 방수화, 부력(浮力) 기능 부여 등이 연구과제다. 각 군이 어떤 형태의 전투복을 착용하든 구매단가 하락이라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를 감안할 때 소재만큼은 통일될 가능성이 높다.
◇신형 전투복은 ‘워리어플랫폼’ 시발점이자 상징=육군의 전투복 개량은 단순한 복제(服制) 개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와 차별되는 한국형 위장 패턴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있다. 육군은 일각에서 제기된 “결국 미군이 2016년 변경한 위장 패턴을 추종할 것”이라는 전망을 일축했다. 육군은 태극이나 태백산맥, 고구려의 기상을 상징하는 삼족오 등을 위장 문양의 일부로 변형해 독자적인 위장 패턴을 구축할 방침이다. 위장 패턴은 고도의 뇌인지과학이 수반되는 첨단 분야여서 짧은 기간에 얼마나 뛰어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신형 전투복은 육군이 구상하는 미래형 병사의 출발점이자 상징이다. 2023년까지 육군 장병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돌아갈 장구류는 19개 품목에 이른다. 여기에는 전방부대에만 보급되던 방탄헬멧과 다목적 방탄복, 분대나 소대 단위 부대에 공용 사용품으로 보급되던 야간투시경과 주야간용 조준경, K2C1소총 등이 포함돼 있다. 전투용 안경과 장갑, 팔꿈치·무릎보호대 등도 기본품목으로 지급된다.
◇PX 에서 소총 사는 시대 열릴 수도=육군은 충성마트(PX) 구매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병사에게 쿠폰을 주거나 봉급 계좌로 보급품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을 송금하고 개별 구매하는 방식이다. 당장 내년부터 부분시행이 예정돼 있다. 이는 ‘소비자 선택’을 통한 제한적 시장기능 도입으로 풀이된다. 공급자 결정 사고에서 벗어나 장병들에게 선택권을 넘김으로써 군납업체들의 품질유지 노력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대부분의 보급품은 군납업체가 복수여서 소비자(장병)의 직접 선택을 받으려는 업체 간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 육군은 성과가 좋으면 19개 품목 전부를 충성마트나 국군복지단 홈페이지를 통해 개별 판매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미군처럼 개인화기마저 PX에서 구매하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람이 최고의 전력’ 인식 바탕=육군이 이 같은 대대적 혁신에 나서는 이유는 두 가지다. 절박함과 수뇌부의 인식 변화. 인구 감소에 따른 병력자원 부족, 병력 축소, 군 복무 단축이라는 병력 수급의 악재가 한꺼번에 몰린 상황에서도 전투력을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만난 접점이 전사로서의 자긍심 부여와 그에 합당한 장비 확충. 워리어플랫폼은 ‘사람 가격이 가장 싼 군대’에서 ‘사람이라는 존재가 가장 귀한 군대’로 변하는 과정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