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Science&Market] 노벨상 만드는 '첨단무기'

이광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중력파 존재 입증한 라이고처럼

연구장비·기술이 과기성과 좌우

외산 단순구매 넘어 국산화 통해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 힘써야



뛰어난 과학적 성과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세심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호기심과 통찰력이 풍부한 과학자에 의해 이론적으로 존재가 예측됐던 것들이 나중에 이를 증명하려는 과학기술자에 의해 첨단연구장비가 개발되고 측정·관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에게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천재 과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박사는 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중력파의 존재를 예측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연구장비를 개발하고 100년 만에 중력파의 존재를 관측하는 데 크게 기여한 3명의 과학자에게 노벨물리학상이 주어졌다.

중력파 발견에 1세기나 걸린 것은 중력파의 세기가 극도로 미세해 기존 연구장비와 관측기술로는 검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시공간과 중력의 개념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아인슈타인의 연구력도 위대하지만 중력파를 검출하려고 수십년간 기초연구를 하고 초정밀 거대 레이저간섭계인 라이고 건설에 필요한 천문학적인 예산을 미국 정부를 설득해 받아낸 과학자들의 열정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예산지원을 받은 후 20년 이상 연구장비의 개발·설치 및 업그레이드를 통해 미세한 중력파를 최초로 관측하는 데 참여한 수많은 과학기술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올해 노벨화학상은 저온전자현미경 기술을 개발한 3명의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저온전자현미경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는 일반전자현미경으로 단백질을 관찰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는 생체분자들이 비생체물질보다 구조적으로 훨씬 약할 뿐만 아니라 수분을 포함하고 있어 관측 과정에서 전자빔에 의해 쉽게 파괴되기 때문이다. 수상자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들은 단백질을 물과 함께 급속 냉동해 자연 상태 그대로의 생체분자를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시료 준비기술을 개발했고 원자 수준에서 생체분자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얻어 3차원 영상으로 처리하는 기술 및 구조분석기술을 개발했다. 단백질 분자를 파괴하지 않고 구조를 쉽게 관찰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기술은 생화학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 X선을 통해 힘들게 연구해야 했던 단백질 구조를 저온전자현미경으로 손쉽게 관찰하게 됨에 따라 신약개발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행히 국내에도 이러한 저온전자현미경 관련 기술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오창센터에 설치·운영되고 있다. 저온전자현미경 기술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하고 준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창센터에는 외국 기업이 판매하는 저온전자현미경뿐만 아니라 주문제작을 통해 세계 최초로 제작·설치한 생물 전용 초고전압전자현미경도 운영 중이다. 저온전자현미경 기술을 이용해 단백질 구조를 연구하는 국내 연구자들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최첨단 연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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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과학기술 성과는 연구장비 개발과 기술발전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고 있다. 반세기 전에 미국은 인간을 달에 보내는 우주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첨단기술을 확보했고 이를 산업에 도입해 수많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 강국으로 자리 잡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라이고 개발과정에서 얻은 레이저·광학·진공 등 수많은 초정밀기술은 미국의 국방과 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온전자현미경 기술 역시 세계 제약산업 발전에 획기적인 공헌이 예상되고 있다.

장기적인 안목과 열정적인 연구를 통해 첨단연구장비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커다란 과학적 진보와 산업계의 발전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마다 연구장비 시설 구축에 1조원 가까운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이렇게 투입된 예산이 외산 연구장비의 단순 구매를 넘어 국산 첨단 연구장비 개발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노벨상도 받고 국가 산업경쟁력 확보에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이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과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뜨거운 열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광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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