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여성은 남성보다 수학, 과학을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 적이 있었으나, 그 편견이 깨진 지 이미 오래다. 미국 과학자 나탈리아 홀트가 쓴 이 책은 1940~1950년대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기연구소(JPL)에 입사해 ‘컴퓨터(계산원)’으로 불린 여성 엔지니어에 대해 서술했다. 당연하게도 여성 엔지니어들은 이 호칭을 매우 싫어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여성 단체’라고 불렀다.
지금은 로켓의 속도를 계산하고 궤적을 작성하는 역할을 슈퍼 컴퓨터가 담당한다. 하지만 JPL이 처음 만들어졌던 1940년대의 컴퓨터는 단순한 사칙연산만 가능했을 뿐이다. 그래서 여성 수학자들이 나섰다. 이들은 연필과 종이, 수학 실력만으로 로켓의 설계를 변화시키고,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개발에 참여했으며, 태양계 탐사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존재는 기계 컴퓨터가 발달하기도 전에 우주선과 같은 기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라는 오랜 의문에 해답을 던져준다.
1960년대 태동한 NASA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도 이 ‘여성 단체’였다. 이들은 NASA의 남성 엔지니어가 소위 ‘잡일’이라 여긴 일들을 도맡아 했다. 이 여성들은 IBM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고치고 구동하는 법을 알아야 했다. 당시 컴퓨터는 서늘한 환경에서만 작동했기 때문에 ‘코라’의 방은 한여름에도 겨울처럼 서늘해야 했다. ‘여성 단체’는 스스로 ‘코라’라고 이름을 붙여준 IBM1620 컴퓨터를 위해 바깥 기온이 40도에 육박해도 출근할 때 스웨터를 챙기는 수고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런 경향은 1970년대에도 이어져 연구소 프로그래밍의 90%를 여성이 책임졌다.
‘인간이 만든 물체 가운데 가장 먼 길을 가고 있는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에서 인간이 남자(men)만을 가리키지는 않는 것처럼 이 책 역시 독자를 여성으로 한정 짓지 않았다. ‘여성 단체’는 위대하고 소소하며 사랑스럽다. 보수적인 치마 정장과 진취적으로 보이는 바지 정장 사이에서 고민하는 일화, 아기를 보모에게 맡기고 미안해하는 일화들을 보면 요즈음 직장 생활과 가정생활의 양립에서 분투하는 워킹맘의 모습이 겹쳐져 재밌으면서도 씁쓸하다.
‘유리천장’, ‘직장 내 성희롱’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나고 있다. ‘여성 단체’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며 누군가에게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 직장 내 성 평등이지만, ‘여성 단체’의 일화들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이나마 그 간격이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1만8,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