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한 남성과 헤어진 후 임신을 발견한 A씨. 이혼 소송 상태 중 법적인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된 B씨. 실직으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상태에서 임신했음을 발견한 여성 C씨. 이들이 임신중절을 하면 범죄일까 아닐까. 현행법상으로는 모두 범죄며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 의료인은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 받는다.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간다며 청와대에 청원이 있었고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자 청와대가 26일 입장을 내놨다. 조국 민정수석은 청와대 홈페이지 등에 올린 동영상에서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사회적·법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8년간 중단됐던 정부의 ‘임신중절 실태조사’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조 수석은 “내년에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실시, 현황과 사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겠다”며 “결과를 토대로 관련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임신중절 실태조사는 과거 5년 주기로 진행됐으나 2010년 조사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조 수석은 “헌재도 다시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을 다루고 있어 새로운 공론장이 열리고 사회적·법적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헌재는 낙태죄와 관련해 2012년에 4대4로 위헌결정 요건(6명)에 못 미쳐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조 수석은 “태아의 생명권은 소중한 권리지만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행 법제가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태아 대 여성, 전면 금지 대 전면 허용 등 대립 구도를 넘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여성단체들은 청와대의 입장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을 내놨다. ‘성과 재생산 포럼’의 나영 기획위원은 “청원은 낙태죄 폐지 요구를 한 것인데 청와대가 폐지 여부에 대해선 입장을 내지 않아 실망스럽다”며 “실제로 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사실상 답변이 될 만한 내용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여성단체 ‘건강과 대안’ 젠더건강팀의 이유림 연구자는 조 수석의 헌재에 대한 언급과 관련 “헌재와 정부는 독립 기관이고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동안 청와대는 낙태죄 청원 답변과 관련해 고심을 거듭해왔다. 이렇다할 입장을 밝히면 여성단체나 보수단체 어느 한 쪽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