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6일 낙태죄 폐지 청원과 관련, 8년간 중단됐던 정부의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재개하는 한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사회적·법적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낙태에 대한 청와대의 의견은 지난달 29일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도입이 필요하다는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한 청원 글이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어섬에 따라 28일 만인 이날 공개된 것이다.
청와대가 홈페이지 청원에 공식 답변을 내놓은 것은 지난 9월 25일 만 14세 미만은 형사처분을 받지 않게 되어 있는 현행 소년법을 개정해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청원과 더불어 이번이 두 번째다.
조국 민정수석은 이날 청와대 페이스북 등을 통한 동영상과 보도자료를 통해 “내년에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실시, 현황과 사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겠다”며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임신중절 실태조사는 과거 5년 주기로 진행됐으나 2010년 조사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가 8년 만에 재개된다.
조 수석은 “헌법재판소도 다시 한 번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을 다루고 있어 새로운 공론장이 열리고 사회적·법적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형법상 ‘낙태’라는 용어의 부정적 함의를 고려해 낙태 대신 모자보건법상 ‘임신중절’이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밝히는 등 관련 이슈가 예민한 주제라고 전제하고 임신중절 관련 법 제도 현황과 그동안 이뤄졌던 관련 논의를 비롯해 2012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합헌 결정의 합헌과 위헌 주장의 근거를 소개했다.
조 수석에 따르면 2010년 조사 기준으로 임신중절 추정 건수는 한 해 16만9천건에 달하지만, 합법 시술은 6%에 불과하며, 임신중절로 인해 실제 기소되는 규모는 한 해 10여 건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해 2천만명이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 시술을 받고 이 중 6만8천명이 사망했다는 조사를 2006년 공개한 바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80%인 29개국에서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해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조 수석은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이지만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불법 시술 양산 및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 원정 시술, 위험 시술 등의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실태조사 재개와 헌재 위헌심판 진행으로 사회적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입법부에서도 함께 고민할 것”이라며 “자연유산 유도약의 합법화 여부도 이런 사회적·법적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며 “이번 청원을 계기로 우리 사회도 새로운 균형점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