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역점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축을 위해 중·동부유럽에 공을 들이고 있다. 유럽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빈곤하고 유럽연합(EU) 참가도 비교적 늦은 이들 국가를 포섭해 EU 시장 접근을 확대하고 역내 영향력을 키우려 하는 것이다. 난민 문제와 EU 회원 가입 등을 놓고 EU의 주도세력인 서유럽국가들과 사사건건 부딪혀온 이들 중·동부국가들 사이에서 중국의 입김이 갈수록 커지자 EU는 유럽 분열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며 경계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중·동부유럽(CEEC) 16개국과 중국 간 정기협의체인 ‘16+1’ 정상회의 참석차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리커창 총리는 27일(현지시간) 이 지역에 총 34억달러(약 3조7,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CEEC 16개국은 헝가리·불가리아·루마니아·폴란드·보스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슬로바키아·알바니아·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체코·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다.
리 총리는 이날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6차 중국·CEEC 경제통상포럼 기조연설에서 중국과 CEEC 간 인터뱅크협회를 설립하고 CEEC 개발협력펀드를 추가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개발은행이 인터뱅크협회를 통해 개발정책협력자금으로 20억유로를 투자하고 10억달러의 투자협력펀드도 조성할 것”이라며 “양측의 금융 채널을 확대하기 위해 중·동부유럽 국가 기업들이 중국에서 국제위안화채권(팬더본드)을 발행하는 것도 돕겠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5년간 중국이 이 지역에 쏟아부은 투자금의 20%가량을 추가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와 파이낸셜타임스(FT)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중국이 2012년부터 중·동유럽 인프라에 직간접 투자한 금액은 150억달러로 추산된다.
중국이 이처럼 중·동유럽에 러브콜을 보내는 데는 유럽에서 일대일로를 완성하려는 야심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되지 않았거나 EU에 가입했지만 관계가 좋지 않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선물 보따리를 풀어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EU에서의 협상력을 높인다는 복안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와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를 잇는 고속철도를 건설하면 그리스 항구로 들어오는 중국의 해운물자가 신속하게 EU 시장에 도달할 수 있다. CSIS의 조너선 힐먼 디렉터는 “중국에 CEEC 16개국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EU로 통하는 교두보로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중국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동유럽국이 EU에서 소외됐으며 EU의 도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해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채무위기는 중·동유럽에 대한 EU 차원의 개발지원 능력을 저해했다”며 “하지만 CEEC는 수년간 (중국 등) 동양에 시장을 개방하면서 급격한 성장세를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중국과 중·동유럽 간 밀월관계가 형성되자 EU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동유럽국들이 중국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EU에 가입하거나 난민 문제 협상 등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EU의 난민수용 정책을 거부해온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이날 중국의 투자를 환영하면서 “유럽은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 세상은 변했고 중국에는 EU 혼자 힘만으로 이룰 수 없는 발전을 실현 가능한 자원이 있다”고 밝혀 EU 수뇌부를 저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