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이지혜는 2012년 ‘지킬 앤 하이드’ 엠마 역할로 화려하게 데뷔한 후 ‘베르테르’, ‘드라큘라’, ‘스위니토드, ‘팬텀’ ‘레베카’ 등 대작들의 주연으로 활약해왔으며 최근 헐리웃 영화 ‘미녀와 야수’ 더빙판에서 주인공 벨의 노래를 부른 바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동요 대회에 나간 뒤 담임 교사의 추천으로 노래를 배우기 시작한 이지혜는 충주에서 ‘MBC 어린이 합창단’ 등을 거치며 꿈을 키웠다. 어릴 때 장래 희망란엔 꼭
‘조수미’라고 적을 정도.
그는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노래가 결국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에 소소한 행복감과 승부욕이 생겨서 노래를 했는데, 아직도 그 기억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 천국과 지옥의 시간...뮤지컬 ‘베르테르’
‘지킬앤하이드’ 10주년 기념공연 무대에 오르며 뮤지컬 배우 발걸음을 뗀 이지혜는 생애 가장 설레는 순간으로 데뷔 날을 떠올렸다. 대구 계명아트센터 로비에 걸려있는 커다란 자신의 사진은 뿌듯함을 안겨줬다.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가진 후 탄탄대로 일 것 같았던 무대는 곧 가장 무서운 곳이 됐다. 이지혜를 떠올릴 때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인 뮤지컬 ‘베르테르’ 때문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 역시 ‘베르테르’이다. 그만큼 그에겐 미운정 고운정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2013년 스물 넷의 나이에 처음으로 ‘롯데’역을 한 이지혜는 “그 땐 너무 어렸다. 지금도 어린데 그땐 아무것도 모를 때였으니까 더더욱 힘들었다. 그 때 영상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고 당시를 회상했다.
‘롯데’와의 인연은 2015년에도 계속됐다. 이지혜는 “감사하게도 조광화 연출님이 다시 불러주셨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만난 ‘롯데’ 는 더더욱 쉽지 않았다. 배우를 하늘위로 데려가는 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지옥 끝까지 보내버리는 조광화 연출의 꼼꼼한 디렉션은 신인 배우를 좌절하게 했다.
“첫 연습 땐 저 보고 ‘천재이다’ 고 하시더라. 그 다음엔 배우들에게 다 같이 박수치라고 하셨다. 전 나름대로 이렇게 해야 하나보다고 인지하고, 두 번째 연습 때 역시 잘하려고 하다보니 망하더라. 선생님이 노트북에 타이핑을 하나 하나 하는데, 타이핑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소리가 심장을 탁탁 치는 것 같았다. 그 코멘트들을 배우들 다 있는 앞에서 읽어주신다. 초반엔 정말 지옥이었다.”
매 공연을 모니터링 하는 지독한(?) 연출가 조광화는 이지혜에게 그 누구보다 두려운 존재였다. 심지어 지방공연도 남김 없이 모니터링 하는 연출가였으니 오죽 했을까. 그는 “나도 나를 못 믿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관객들이 나를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광화 연출은 이지혜에게 잊지 못할 한마디를 해준다. “‘지혜야. 넌 빛나는 배우가 될거야. 포기하지 않을거야’ 라고 말 해주셨다. 그 때 너무 감동적이었다. 선생님 자체가 베르테르셨으니까. 그만큼 롯데에 대한 애정이 많으셔서 배우들이 더 잘 될 수 있게 혼내셨다. 제가 2013년에 다 하지 못했던 걸 좋게 봐주셔 15주년 ‘베르테르’ 공연에 제안을 해주신 것 같다. 제가 제일 존경하는 연출가이시다.”
이지혜에게 다시 만나고 싶은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0.1초도 흐르지 않고 바로 튀어나온 대답 역시 ‘베르테르’이다. ‘천국과 지옥’을 오간 이지혜는 그렇게 성장했다. 그는 “제가 서른 중반이 되기 전에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작품이 ‘베르테르’이다” 며 “30대 중반의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성숙함을 가진 뒤 이 작품을 만나면 또 다른 정서가 나올 것 같다. 조광화 연출님이 ‘넌 너만의 롯데가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다음 공연 때도 불러주시면 뛸 듯이 기쁠 것 같다.”
● 남다른 뮤지컬 자매...옥주현과 이지혜의 연결고리
노력과 재능으로 대극장 주연 자리를 꿰찬 배우 이지혜. 그의 장점은 공감대 형성을 잘 한다는 점. 그래서 그럴까. 그와의 대화는 도란 도란 친한 친구와 대화하는 듯 소소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저의 장점이자 단점이 공감대 형성을 잘 한다는 점이다. 어떤 사건에 공감하면 ‘아 그렇구나’ 아닌 ‘아예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 사람이 되는 거라고 말하면 쉬울까. 배우 생활하면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긴 한데, 슬픈 사건이나 안타까운 사건이 생기면 그 감정이 제 안으로 깊게 들어와서 힘들기도 하다.”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2014년 설립 이후 줄곧 옥주현을 지원해 온 ‘포트럭’이 3년만에 새롭게 뮤지컬 배우 ‘이지혜’를 영입했다는 소식을 전한 것. ‘포트럭’은 프레인글로벌의 뮤지컬관련 자회사이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각자 러빗 부인, 조안나 역으로 만난 것이 첫 인연이 되어, 친언니처럼 가까이 지내며 매일 발성과 연기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옥주현의 적극적인 콜을 받은 이지혜는 옥주현의 제안에 기쁘면서도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너무 감사한데, 주현 언니가 절 그렇게 좋게 생각해주는 건 처음 알았다. 제안을 받고 여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되게 감동적이었죠. 막 언니랑 웃고 떠들고 있는데, 언니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언니의 계보를 잇는 후배로 키우고 싶다고. 그래서 ‘내가 옥주현처럼’? 언니가 가진 능력이 대단하지 않나. 그래서 놀랐더니 언니가 ‘넌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몰라’라고 말하더라.”
옥주현과 이지혜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다르면서 묘하게 닮은 점이 많았다. “언니는 세심한 편이라면, 전 털털한 편이다. 성격이 다른데 오히려 그게 서로 잘 맞는 것 같다. 같은 장녀라 통하는 것도 많다. 첫째 딸끼리 그 느낌을 알아보는 게 있다. 정말 싫어하는 것도 비슷하더라.”
최근에는 옥주현과 나란히 고양이를 한 마리씩 입양했다. 어린 고양이가 아프면 마음이 어찌나 아프다가다, 다가와 자신을 향해 애교를 부리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단다.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지혜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 평범한 이름 이지혜...“꼭 기억에 남는 배우 이지혜 되고파”
이지혜와 옥주현은 흥행 열풍을 몰고 온 뮤지컬 ‘레베카’에 이어 ‘안나 카레니나’에서 다시 인연을 이어간다. 이지혜는 내년 1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하는 톨스토이 원작의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러시아 백작 가문의 딸인 ‘키티’ 역을 맡았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와 정확히 대비되는 사랑을 보여주며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가치를 드러내는 역할이다.
오디션을 통해 합류하게 된 이지혜는 “원작이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러시아 뮤지컬이 처음이고 국내 초연작이라 너무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아직은 3권짜리 원작 소설을 독파하는것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 이지혜는 “진정한 사랑과 신뢰를 이뤄가는 ‘키티’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고 귀띔했다.
이지혜는 “평범한 이름일 수 있지만, 꼭 기억에 남는 이지혜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이름을 바꾸는 건 원래 제 이름에게도 미안하고, 부모님이 주신 이름을 잘 지키고 싶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이지혜가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건 “죽을 때까지 노래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는 “성대가 살아있는 증거이듯 노래를 계속 부르고 싶다”고 했다. 이어 “아이 엄마가 된 뒤에도 인터뷰로 또 만나고 싶다”며 사람 좋은 미소를 건넸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불러와서, 내가 노래를 부르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어느 날 목소리가 안 나온다면? 전 살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계속 관리하고 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노래 하고 싶다. 아직 연륜이나 경험치가 많지 않다. 10년, 나아가 20년 경력의 선배들이 말하더라. 계속 산을 넘어가는 기분일 것이다고. 그 말이 맞더라. 늘 큰 산을 넘는 기분이다. 매번 무대가 쉽지 않지만 그 동안 무대에서 경험한 것들이 제겐 큰 재산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