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파격적인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안이 상원을 통과하면서 한국보다 13%포인트나 높던 세율이 이제는 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밖으로부터는 강력한 통상 제재와 고환율, 안에서는 최저임금 상승, 근로시간 단축 등에 따른 비용 상승 등 샌드위치 압박에 시달리던 국내 기업은 세금 폭탄까지 떠안은 채로 글로벌 기업과 치열한 생존 싸움을 벌일 상황에 처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마저 지난달 한국 경제를 평가하면서 최저임금 인상과 법인세 인상을 성장세를 떨어뜨릴 위험요인으로 판단하며 “법인세 인상은 투자 둔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정부 여당은 요지부동의 상황이다.
◇한국 법인세 최고세율, 미국보다 더 높아져=미국 상원이 2일(현지시간) 감세를 골자로 한 세법을 통과시키면서 미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35%에서 20%까지 대폭 낮아진다. 상·하원 병합심사 등의 남은 절차를 마치면 미국 기업은 15%포인트에 달하는 파격적인 감세 혜택을 누린다. 미국 기업으로서는 경쟁력을 키울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반면 한국은 현재 22%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올리는 정부 안이 국회에 올라와 여야 간 치열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현행 법인세율은 △과세표준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 22%인데 여기에 ‘2,000억원 초과 25%’ 구간을 하나 더 두는 게 정부 안이다.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한국 기업들은 미국 기업보다 5%포인트 높은 세율을 등에 업고 경쟁해야 할 상황이다.
물론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이 법인세 인상안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내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일부 최고세율이 낮아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야당의 대안이 최고세율을 현행보다 1%포인트 올리는 수준이어서 사실상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이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확실시된다.
◇대기업 稅 부담 3조원 더…재계 “충분히 내고 있어”=지난 8월 정부 세법개정안 발표 당시 기획재정부 분석에 따르면 과세표준 2,000억원 이상에 최고세율 25%를 매길 경우 2016년 신고 기준으로 129개사가 연 2조5,599억원을 추가 부담한다. 여기에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축소와 설비투자 세액공제 축소 안의 영향(5,500억원 증세)까지 모두 고려할 경우 정부와 여당 안에 따른 대기업의 세 부담 증가분은 약 3조1,000억원에 이른다.
야당 안이 그대로 수용되더라도 세 부담은 역시 만만치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야당 안대로 구간은 그대로 두고 최고세율만 23%로 올릴 경우 1,100여개 기업(과세 표준 200억원 초과)이 연 1조6,000억원 정도 법인세를 더 낸다. 여기에 R&D·설비투자 세액공제 축소가 정부 여당 안(5,500억원)대로 추가되면 기업들의 총 세 부담은 연 2조1,000억원으로 분석된다. 홍성일 한경연 경제정책 팀장은 “지난 5년간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대기업은 전체 법인의 0.2%로 당기순이익의 36.3%를 차지했지만 법인세의 49.2%를 부담했다”며 “이미 상당한 기여를 하는 만큼 극소수 기업에 법인세를 더 부과해도 문제없다는 식의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상·고환율·최저임금에 세금까지…4각 파고 덮친 국내 기업=기업들은 밖으로는 통상 압박과 고환율에 시달리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 협상을 앞두고 미국 무역위원회(ITC)는 지난달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과 관련해 120만대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50%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에 앙금이 남은 듯 롯데그룹에 대한 제재를 풀지 않았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은 1,090원이 무너지며 수출에 비상등이 켜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는 원·달러 균형 환율을 1,184원으로 추산했는데 100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현대연은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악화하고 수출이 둔화해 경제 성장세가 떨어지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생긴다”며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에 큰 어려움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부 사정은 더 어렵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16.4% 급등하고 새 정부 공약대로라면 오는 2020년 1만원대 인상이 예고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근로시간 단축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합의하지 못한 가운데 정부가 사실상 주당 68시간 근로까지 허용하는 행정해석을 폐기 또는 변경해서라도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해온 만큼 단축 가능성은 높다. 여기에 민간 기업까지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등 노동시장 경직화까지 경영환경 곳곳에 암초가 널려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 부담까지 커졌다. 미국 등 주변 경쟁 국가들이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동안 우리 정부만 거꾸로 세금을 올리면서 글로벌 경쟁력만 떨어지고 있다. 기업들의 세금 부담은 결국 제품값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세계 시장에서 미국·일본 기업과 맞서야 하는 우리 기업으로서는 마치 100m 달리기 시합을 하면서 10~20m 뒤에서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재계의 하소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