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1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해 “비트코인 거래를 금융거래로 보지 않는다”며 “금융거래로 인정할 때 여러 문제로 파생될 수 있어 제도권 거래로 인정할 수 없고 당연히 선물거래도 안 된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대표적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미국에서 선물거래를 시작하면서 출범 8년 만에 제도권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것과 상반된 시각이 녹아 있다.
그는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연 금융위원회 출입기자단 송년 세미나에서 “(정부 규제는) 비트코인 거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무분별한 투기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참모들도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 관련한 논의를 벌였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수석·보좌관회의 직후 서면 브리핑에서 “오늘 가상통화 동향 및 대응 방향에 대한 검토가 있었고 대통령과 총리의 주례 오찬회동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가상화폐 관련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향후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관리하면서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거래소를 인가하거나 선물거래를 도입하는 방향으로는 절대 안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 정부와 비교해 비트코인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가 보수적이라는 지적에 “미국은 선물거래의 역사가 민간회사에서 출발했지만 우리는 파생상품 거래가 법에 규정돼 있어 출발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최 위원장은 “비트코인 거래를 인정하면 우리 경제에 보탬이 되는 게 있나”라고 반문한 뒤 “수수료를 받는 거래소와 차익을 벌어들이는 투자자 외에 우리 경제에 현재로서는 아무런 효용이 없고 부작용만 눈에 뻔히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이어 “정부 내에서 (가상화폐) 거래 전면금지를 포함해 어느 수준으로 규제할지 논의 중”이라며 “법무부는 비트코인 거래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그러려면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며 다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규제해도 되느냐는 의문도 있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가상화폐 규제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법무부와 상반된 인식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 위원장은 “다만 미래를 알 수 없어 조심스러운데 그래도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도 이날 세미나에서 “법무부가 주관하기로 한 가상통화 태스크포스(TF) 내에서는 가상통화 거래금지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면서 “부처 간 논의 끝에 법적 근거와 시장의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 부위원장은 “제도권 금융회사는 가상통화 관련 거래에 뛰어들 수 없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입장”이라며 “그동안 가상통화 거래소를 부수 업무로 허용해달라는 금융회사가 여러 곳 있었지만 모두 허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가상통화 가격이 오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다음 사람이 내가 원하는 가격에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며 “이는 다분히 다단계금융(폰지형) 사기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또 은행의 가계대출 중심 예대마진 장사에도 제동을 걸었다. 최 위원장은 “가계부채의 잠재 리스크 관리 강화를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높은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자본규제를 강화하겠다”면서 “은행 예대율을 산정할 때도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을 구분해 차등화된 가중치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예대율이란 원화예수금 대비 원화대출금의 비율이다. 금융위는 은행업감독규정을 통해 은행들이 예대율을 100% 이하로 관리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지금까지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은 똑같이 원화대출금에 반영됐지만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의 가중치를 달리 조정한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금융당국은 또 LTV가 높은 주담대를 빌려줄 경우 현재 30~40% 수준인 위험가중치를 높이도록 할 방침이다. 이 때문에 은행들의 LTV 대출은 신규는 물론 만기연장도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부문별 경기대응 완충자본’도 도입된다. 최 위원장은 “거시건전성 규제 차원에서 급속한 가계신용 팽창 시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금융권 자본규제개편 방안을 금융감독원·한국은행 등과 논의하고 있으며 최종안은 내년 초 발표된다. 기존 차주의 부담이 늘지 않도록 대출금리 추이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반발하는 분위기다. 은행권의 관계자는 “선진국은 가계대출의 위험가중치를 낮추는 방향으로 가는데 우리는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최 위원장의 직접적 화법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금융시장은 민감해 역대 금융당국 수장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시장에 개입해왔지만 최 위원장은 현안마다 ‘돌직구’를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최 위원장의 최근 발언으로만 놓고 보면 시중은행들은 주담대를 통해 이자장사만 해온 부도덕한 집단 이미지를 덧칠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구나 최 위원장은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 절차에 대해 이날 다시 한번 문제를 제기했다. 최 위원장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주인’이 없기 때문”이라며 “대주주가 없다 보니 현직이 자기가 계속할 수 있게 여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그런 부분을 지적한 것”이라며 “개선책을 강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지난달 29일 “최고경영자(CEO) 스스로 (자신과) 가까운 분들로 CEO 선임권을 가진 이사회를 구성해 본인의 연임을 유리하게 짠다는 논란이 있다”고 언급한 데 이은 것이다. 그는 당시 “유력한 승계 경쟁 후보가 없는 것도 논란”이라면서 금융지주 회장들이 연임에 유리하도록 이사회와 회장 후보 추천기구를 구성하는 등 ‘셀프 연임’을 한다고 비판했다.
최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도 “(금융지주사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 등을 규정한) 제도가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며 “(개선방안을) 찾아보겠다는 게 당국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의 발언은 최근 연임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3연임 도전이 점쳐지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지만 최 위원장은 “민간회사의 인사에 개입할 의사도 없고, 정부는 여태껏 그래오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는 또 “특정인을 어떻게 하겠다는 의도는 아니다”라며 “다만 이런 상황(연임의 제도적 문제)이 없다면 내가 얘기할 일도 없다”고 덧붙였다.
최 위원장은 그러면서 “(내 발언에) 어떤 배경이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몰고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현재 이런 상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정부가 말한 배경”이라고 단언했다.
최 위원장은 금융지주 회장들이 재벌 행세를 한다는 지적에 “그런 비판도 많이 있고 상당 부분 일리가 있다”면서도 “(회장들이) 제왕적으로 행동하는지, 거기까지 관심을 가질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이 (회장에) 선임되고 그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는 시스템을 갖추게 하겠다는 게 우리 생각”이라고 부연했다.
최 위원장은 혁신성장을 위한 금융당국의 추진 방향도 강조했다. 그는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을 늦어도 내년 초 구체적으로 발표하겠다”면서 “스타트업 성장 지원을 위한 ‘혁신모험펀드’를 조속히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김기혁·민병권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