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연일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개선 압박을 꺼내는 미묘한 타이밍에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KB금융과 신한금융 등 4대 금융지주 회장과 비공개 조찬 회동을 열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이슈를 설명하기 위한 자리라고는 하지만 일부 금융지주 회장은 “언급하기 조심스럽다”고 말해 이날도 지배구조 개선을 압박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 원장은 이날 윤종규 KB금융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김용환 NH금융 회장과 조찬을 가졌다. 최 원장이 취임한 후 지주 회장들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최 원장은 금감원 조직개편과 ‘금융감독·제재 혁신안’ 등 앞으로의 감독 방향을 전달하고 비트코인 이슈와 관련해 시중은행들이 제공하는 가상계좌가 자금세탁 등 불법 자금거래에 사용될 우려가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열어줄 뿐 별도 관리는 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투기적 분위기 속 자금세탁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큰 만큼 내부 통제를 확인하고 면밀히 대응하라는 취지다. 시중은행 입장에서도 자금세탁 방지 문제에 걸리면 해외지점 법인까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최 원장은 이어 금감원이 진행할 지배구조 실태점검 계획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지주 회장들에게 직접적으로 지배구조에 관해 코멘트하기에는 조심스럽지 않겠냐”면서 “전날 언론사 간담회에서 정책 설명을 하려고 했는데 지배구조 질문만 들어와 입장이 난처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원장이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 승계 프로그램에 대한 실태점검 등 지배구조에 대한 전면 검사를 착수하겠다고 언급한 직후 당사자들과의 회동이라 간접적인 압박이 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조찬 자리도 채 1시간이 되지 않아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원장은 지난 13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에 있어 굉장히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방법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최 원장은 크게 △회장 후보군 관리에서도 현 회장이 빠져야 한다는 점 △지주사 내부에 계열사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는 점 △사외이사 평가 시스템 등 세 가지를 개선사항으로 지목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금융사의) 대주주가 없다 보니 현직이 자기가 계속할 수 있게 여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며 금융지주 회장 승계 과정과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를 직접 겨냥해 논란을 촉발했다.
금감원은 전날 CEO 승계프로그램에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밝힌 데 이어 이날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에 경영승계절차와 사외이사제도 등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오는 20일께 발표되는 금융행정혁신위원회에서도 CEO 경영승계 원칙과 추천 절차 등을 명확하게 개선하라는 권고안이 담길 것으로 알려져 당국의 압박 강도는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황정원·김기혁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