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시장이 혁신이냐 투기장이냐를 두고 세계가 혼란에 휩싸였다.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 이어 세계 최대의 선물거래소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도 17일(현지시간)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시작했다. 이로써 미국은 가상화폐 시장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며 안착시키려는 모습이다. 일본도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가상화폐를 활용한 거래를 허용하고 결제수단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한국은 금전적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가상화폐를 제도권에 두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13일 미성년자·금융권의 투자 참여 제한과 세금 부과 등의 내용을 담은 가상화폐 투기 과열 긴급대책을 내놓았다. 최근 직장인은 물론 주부·청소년들까지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들며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투기 광풍에 화들짝 놀란 모습이다. 애초의 거래 전면 금지에서는 한발 물러섰지만 시장 과열과 투기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서둘러 대책을 내놓았다.
요즘 국내에서도 가상화폐로 결제할 수 있는 음식점이 생겨났다고는 하지만 법정화폐로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고 연속성조차 담보되지 않은 가상화폐에 투자한다는 것은 아직 투기에 가깝다. 돈 많은 투자자가 가상화폐의 가격을 좌지우지하고 한 시간에도 몇십%씩 가격이 널뛰기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정부는 시장에 대한 규제만 내놓았을 뿐 가상화폐 산업에 대한 비전이나 정책의 방향성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혁신의 산물이다. 거래 내용을 위조할 수 없도록 네트워크 안의 모든 참여자가 공동으로 정보를 검증하고 기록·보관함으로써 기존의 화폐를 대신할 혁신적인 데이터 기술로 주목받아왔다.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수년 안에 핀테크 기술과 금융보안 산업 등으로 응용 분야도 넓어질 것이다. 그러한 본질은 잊은 채 단순한 투기 수단으로만 비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정부도 이런 산업적인 측면은 간과하고 일방적인 규제로만 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상화폐 시장을 단순히 투기로 단정 짓고 신기술에 대한 방향성이나 입장조차 발표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결국 이러한 정부의 일방적인 규제가 블록체인 기술 혁신의 속도를 늦출 가능성도 크다.
투자자 보호와 공정한 거래 시스템 등 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사실이다. 하지만 가상화폐 열풍을 잠재우려다 금융 혁신에 역풍을 맞을까 우려가 된다. 말로는 4차 산업혁명을 키운다면서 근시안적인 처방으로 일관한다면 우리는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왜 비트코인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됐는지, 그것에 어떠한 기술적 가치가 있는지,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자리 잡아갈지 고민해야 할 때다. 시장 과열에 대한 엄포만 늘어놓는 규제를 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미래에 대한 우려와 불안을 해소할 때 비로소 투기가 사라지고 진정한 투자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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