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정부, 편법·변칙상속 원천차단] 20억대 아파트 증여받고 세금도 안내...'일상화한 탈세'와 전쟁

검증대상 늘리고 현미경 검증...과세 형평성 확보

아파트 투기 수요 막아 부동산가격 안정화 의지도

대기업 일감몰아주기도 조사 추가 세금추징 계획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 국세청에서 이동신 자산과세국장이 경영권 세습을 위한 변칙 증여 등 재벌 오너 일가 세무조사와 관련한 ‘대기업·대재산가 변칙 상속·증여 검증 태스크포스(TF)’ 활동 경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 국세청에서 이동신 자산과세국장이 경영권 세습을 위한 변칙 증여 등 재벌 오너 일가 세무조사와 관련한 ‘대기업·대재산가 변칙 상속·증여 검증 태스크포스(TF)’ 활동 경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직장인 A씨는 20억원가량의 상속재산을 두고 한 세무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그는 “20억원 정도로는 금액이 작아 당국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일이 따져서 세금을 납부하기보다 적당히 마무리 지으라는 뜻이었다.

A씨 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국세청은 어머니와 외할머니로부터 현금을 증여받아 서울 서초구의 재건축 아파트를 비롯해 10억원대의 부동산을 사들인 보건소 공중보건의를 적발했다. 친족이 운영하는 하청업체에 일감을 몰아준 뒤 증여세를 탈루하거나 임직원에게 명의신탁한 주식을 자녀에게 우회 증여해 수십억원의 세금을 탈루한 경우도 있었다. 금액의 정도가 문제지 이 같은 사례는 부지기수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지난해 국세청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납세자 인식 수준 설문조사를 보면 개인이나 기업이 세금을 탈루할 때 과세관청에 적발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16.8%가 ‘매우 낮다’, 53.2%가 ‘대체로 낮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1,676명) 가운데 70%가 ‘낮다’고 보는 셈이다. 반면 ‘대체로 높다’는 27.2%, ‘높다’는 2.8%에 불과했다.

과세 당국이 과세소명자료 발송을 2배 확대하기로 한 데는 이처럼 변칙 상속·증여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상속·증여에 대한 감시 강화로 과세 형평성을 확보하자는 게 정부의 일차적인 의도다. 상속세 납부 대상은 지난 2012년 4,600명에서 지난해 6,217명으로, 같은 기간 증여세는 7만7,789건에서 11만6,111건으로 늘었지만 실제 납부 대상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과세 당국은 보고 있다.


여기에는 아파트 투기 수요를 막고 강남을 비롯한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속내도 들어 있다. 정부의 부동산 거래 관련 세무조사 때도 편법 증여 사례가 다수 나왔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편법을 이용하거나 변칙적인 상속·증여가 일상화되다 보니 국민들이 상속·증여세 탈루에 대해 둔감한 상황”이라며 “특정 지역의 수십억짜리 아파트값이 계속 뛰는 데는 편법 상속이나 증여가 한몫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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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장주식의 물납 후 가족이 이를 헐값에 사들이는 사례를 막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속세·증여세를 낼 현금이 부족해 비상장주식으로 물납한 금액은 지난해만도 798억원이다. 비상장주식은 거래가 쉽지 않아 매수자가 없어 가격이 떨어지는 사례가 많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8년간 물납 주식 8,464억원어치를 5,673억원에 팔았다. 2,791억원을 밑진 셈이다. 문제는 이 중 상당수가 친족 같은 특수관계인에게 넘어간다는 점이다. 주식을 싸게 매입할 경우 사실상 상속·증여의 효과가 있다. 기재부가 저가매입제한 대상을 본인에서 2촌 이내 친족과 이들이 1대 주주로 있는 법인으로 확대 적용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실소유 논란이 있는 ㈜다스만 해도 이 전 대통령의 처남 김재정씨 사망 후 부인 권영미씨가 이를 물려받으면서 상속세 416억원을 현금 대신 다스의 비상장주식(지분율 약 20%)으로 냈다. 기재부는 이 지분을 매각하려 했지만 만 지난해 여섯 차례 유찰되며 최저입찰가격이 40%가량 낮아졌다. 계속되는 유찰로 매각 예정가격이 낮아진 뒤 이를 권 씨의 자녀가 되사면 상속세를 그만큼 덜 내는 셈이 된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2011년 4월 국유재산법 시행령에 물납자 본인의 주식 저가매수 금지규정이 신설돼 본인의 꼼수는 차단했지만, 자식이나 특수관계인을 통해 우회 매입하는 경우는 막을 수 없었다”며 “2촌 등으로 범위를 확대해 가족에게 편법으로 물려주는 것을 막겠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도 현미경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달 위장 계열사 운영 및 차명주식을 통한 탈루 사례를 적발해 31건, 107억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은 내년 2월까지 대대적인 검증을 벌여 추가적인 세금 추징을 할 계획이다.

과세 당국 안팎에서는 이 같은 상속·증여에 대한 검증 강화와 세금 추징이 문재인 정부 내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취임 후 “성실 납세자를 허탈하게 하는 대기업과 대자산가의 변칙적인 상속·증여 등 고의적인 탈세를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이에 대해 “상속·증여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는 방향은 맞지만 소명자료 발송 같은 구체적인 숫자와 내용은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세종=김영필·임진혁기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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