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096770)이 SK주유소 3,600곳을 공유 인프라로 제공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해법으로 제시한 ‘공유 인프라 경영’의 첫 실행 방안인 셈이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인 SK에너지의 전국 주유소 3,600곳을 공유 인프라로 제공하기로 결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이와관련, 전 국민을 대상으로 주유소를 활용한 사업모델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주유소 상상 프로젝트’를 내년 1월말까지 진행한다. 이후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8개의 사업모델을 선정하고 사업모델 선정자들에게 SK에너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사업기회도 제공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낸 대학생들이 입사지원할 경우 서류전형에서 가산점도 준다.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은 SK주유소가 보유한 주유기, 세차장, 유휴부지 등 눈에 보이는 유형 자산은 물론 사업구조, 마케팅 역량, 경영관리역량 등 무형 자산을 모두 포함한다. 예컨대 주유소 부지 내 광고판에는 홍보와 광고와 관련한 사업 아이디어를 접목할 수 있으며 주유소 내 비어 있는 사무실은 공공에 개방하거나 스타트업 사무실 등으로 제공한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기업이 가진 인프라를 공유하는 것은 사회와 행복을 나누고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도 있다”며 “공유 인프라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SK그룹이 지향하는 ‘개방형 생태계’ 구축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공유 인프라는 최 회장이 지난 6월 개최한 SK그룹의 확대경영회의에서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당시 최 회장은 “서로 다른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들이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자산이 큰 가치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며 “각종 인프라와 경영 노하우 등 유·무형의 자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SK는 물론 외부 협력업체 등과 ‘또 같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단순히 SK 자산을 나눈다는 사회공헌활동 차원을 넘어 공유 인프라를 통해 누구나 창업을 하고 사업을 키워내는 것은 물론, 사회문제를 해결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 최 회장의 의지다.
그동안 SK그룹 내부에서는 ‘공유인프라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고, 지난 10월 열렸던 ‘CEO 세미나’에서도 ‘공유 인프라’를 집중 다뤘다.
이런 과정에서 이미 SK그룹 일부 계열사를 중심으로 보유한 특허기술을 협력업체와 공유하고 사옥의 일부 공간을 공공에 개방하는 등 SK 자산을 공유하려는 부분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처럼 핵심 자산을 공유 인프라로 내놓고 공공의 아이디어를 활용해 실행방안을 모색하려는 본격적인 모습은 처음이어서 앞으로 SK텔레콤(017670), SK하이닉스(000660), SK네트웍스(001740) 등 주요 계열사들도 ‘공유 인프라 경영’에 더욱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룹의 자산을 공유하면서 기업과 공공 사이의 쌍방향 의사소통을 통해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겠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며 “공유 경제가 세계적인 흐름인 만큼 최 회장의 실험이 성공하게 되면 국내 산업계에 주는 시사점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