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인이 지은 지 30년이 넘은 다세대 주택 리모델링 예산을 짜면서 고민에 부딪혔다. 외벽 마감이 문제였다. 석재로 마감을 하면 가격이 비싼 반면 드라이비트로 하면 절반값에 할 수 있었다. 단지 드라이비트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두 마감재는 일반인의 눈에 외관상 큰 차이가 없었다. 고민 끝에 결국은 수천만 원을 더 주고 석재 마감을 택했는데 가족이 사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리모델링한 옆 건물은 드라이비트를 택했다. 세주는 집이었다. 불은 멀고 돈은 가까웠다.
두 집 모두 지금까지 몇 년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훨씬 높다. 마감 석재값은 괜히 쓴 돈이 돼버릴 확률이 높다. 안전을 위해 치르는 비용은 이같이 매몰 비용일 때가 많다. 만에 하나 잘못됐을 때만 문제가 커질 뿐이다.
지난해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했다. 대부분 돈을 아끼려다, 시간을 적게 들이려다 발생한 인재(人災)들이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발생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건설 업종에서 사망한 사람은 451명에 달했다. 전년 대비 13%나 증가했다. 하루에 한 명 이상의 사람이 공사판에서 사고로 죽었다. 사고 원인을 살펴보면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작업자들의 안전 인식이 ‘미개해서’가 아니다. 하청의 하청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줄이려다 보니, 시간에 쫓겨 작업을 하려다 보니, 안전수칙은 뒷전이어서 발생한 사고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안전수칙을 지키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결국 ‘내가’ 내야 한다는 점이다. 공사장에서 안전수칙을 지키는 만큼 공사비는 올라가고 이는 소비자인 ‘내가’ 건설사와 함께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비용을 감수할 용의가 있을까. 얼마 전 발생한 제천 사고로 소방도로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그러나 아직도 주택가 골목길은 어디나 주차된 차들로 빼곡하고 아파트 주차장에는 소방차 전용 구획선이 없거나 있어도 이를 무시하고 주차한 경우가 많다. 주차 공간이 부족하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합법적인 주차 공간에 차를 대야 하는데 이를 강제하면 ‘시간이 들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민원이 빗발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이유로 ‘소방자동차 전용 구역’을 의무화하고 안 지킬 경우 과태료를 물리는 조례나 법안은 번번이 좌절됐다.
세월호 사고 후 안전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지만 통계상으로나 체감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안전은 돈이고 불편이다. 비용을 지불하고 불편을 감수할 용의가 없는 안전구호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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