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바이오

만성 백혈병, 열에 아홉은 산다

표적항암제 '글리벡' 등장으로

만성 생존율 20%서 90%대로↑

환자 75% 차지하는 급성은

치료 어렵고 항암제도 없어

조혈모세포 이식에 의존

비정상적인 백혈구만 폭발적으로 증가한 급성 백혈병 환자의 혈액세포 영상.비정상적인 백혈구만 폭발적으로 증가한 급성 백혈병 환자의 혈액세포 영상.




영화 ‘러브 스토리’와 한류의 시발점인 드라마 ‘가을동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여주인공 모두 백혈병으로 연인 곁을 떠난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여성이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산다는 설정은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남자 환자가 57%로 더 많다.


백혈병은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등 혈액세포를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유전자 돌연변이로 비정상적인 백혈구(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 포함)만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질환이다. 백혈구는 면역체계를 구성해 외부물질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정상인의 백혈구 수는 혈액 1㎕(마이크로리터)당 4,000~9,000개 정도다. 하지만 백혈병에 걸리면 많게는 50만개까지 늘어난다.

서울성모병원 어린이학교에서 소아혈액암 환자들이 병원 소속 수녀님으로부터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성모병원서울성모병원 어린이학교에서 소아혈액암 환자들이 병원 소속 수녀님으로부터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성모병원


반면 정상적인 백혈구나 적혈구·혈소판 세포는 부족해진다. 그 결과 적혈구 감소에 따른 빈혈, 지혈 기능을 하는 혈소판 감소로 출혈과 멍이 잦고 코피·월경 등이 잘 멈추지 않는다. 또 정상 백혈구 세포의 감소로 면역 기능이 저하돼 폐렴·장염 등 여러 감염 질환에 취약해진다. 간·비장이 비대해져 소화불량 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혈액암은 성인의 경우 전체 암의 5% 미만이지만 소아·청소년에서는 백혈병·림프종만 해도 33%(5,200여명)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크다. 백혈병의 경우 매년 2,400여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하는데 급성이 75%(골수성 50%, 림프구성 25%), 만성이 16%(골수성 15%, 림프구성 1%), 상세불명 백혈병이 9%를 차지한다. 골수성 백혈병은 50세 이상 성인에서, 림프구성 백혈병은 소아에서 흔하다. 인구 10만명당 발생 건수는 각각 4.1건, 1.3건 정도다. 혈액암에는 림프세포에서 유래되는 악성림프종, 림프세포보다 조금 더 분화된 세포에서 나오는 다발골수종 등도 있다.

혈액암은 암세포가 피를 타고 우리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항암제나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치료한다. 급성·만성 백혈병은 발병 기전부터 경과·예후 등에 큰 차이가 난다.

급성 백혈병은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빠르며 대부분 이상 증상으로 병원에서 피검사를 통해 진단받는다. 소아백혈병 대다수를 차지하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과 성인에서 많이 발생하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나뉜다.


급성 백혈병으로 진단되면 5~6주간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는다. 골수검사에서 백혈구 세포가 5% 미만으로 줄어 백혈병 증상이 없어지고 백혈구·혈소판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으로 확인돼 ‘완전 관해(寬解)’ 판정을 내려지면 재발 위험을 판단해 약물치료를 계속하거나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는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완전 관해 확률이 70~80%,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90%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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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은 유전자 변이가 수십 가지 이상으로 복잡해 치료가 어렵고 잘 듣는 표적항암제도 없다. 그래서 방사선 등으로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완전히 파괴한 뒤 다른 사람의 것을 이식받는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조혈모세포는 과거에는 전신마취를 하고 골반 뼛속(골수)에서 빼냈지만 지금은 말초혈관으로 불러내 헌혈하듯 뽑아낸다. 그래서 요즘에는 골수 이식 대신 조혈모세포 이식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다.

만성 백혈병은 느리게 진행된다.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피로감, 빈혈, 체중 감소, 비장 비대에 따른 소화불량 등 비특이적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했다가 진단되기도 한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9번·22번 염색체의 끝부분이 절단된 뒤 상대편과 잘못 결합해 생긴 이상 염색체(필라델피아 염색체)와 이상 유전자 간 융합(BCR-ABL1 유전자)으로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 백혈구 계열의 세포가 적혈구 계열보다 50배가량 많아진다.

환자의 병기는 만성기·가속기·급성기로 나뉜다. 환자의 90% 이상은 만성기에 진단되며 만성기는 3~4년가량 지속된다. 병이 진행될수록 원인 모를 열, 심한 체중 감소, 골관절 통증, 출혈·감염 등의 증상이 심해지며 비장이 비대해진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기 환자의 75~80%는 2.5~3년 뒤 급성기로 진행된다. 표적항암제가 안 듣게 되면 급성기로 전환돼 암세포가 무한 증식, 1년 안에 사망하기도 한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과거 골수 이식(현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지 못하면 거의 사망했지만 2000년대 초반 첫 표적항암제 ‘글리벡’ 등장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생존율이 90%대로 높아졌고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경우 재발하지 않으면 자연수명까지 살 확률도 10~20%에서 60~70%로 높아졌다.

글리벡으로 치료받는 환자 가운데 30%는 사용 도중 내성이 생기거나 부작용으로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글리벡의 화학구조를 변형한 2~3세대 표적치료제와 완전히 다른 구조의 4세대 신약이 개발됐다. 지금은 일양약품의 표적항암제 ‘슈펙트’ 등 2세대 항암제까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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