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의 첫 번째 목적은 차익 실현이다. 낮은 가격에 매수해 높은 가격에 팔거나 미리 시장의 방향을 예측해 파생상품 매매로 차익을 얻는다. 시장의 움직임과 종목의 펀더멘털에 따라 투자 의사를 결정한다. 시세 조종, 통정 매매 등 불법이 아니라면 합리적 차익에 문제는 없다.
그럼 주식회사 설립이나 참여로 획득한 주식의 차익 실현도 시빗거리가 없을까. 우리 상법에는 주주가 보호예수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주식 거래로 이익을 얻는 것을 막지 않는다. 다만 주주의 의무에 ‘주주가 아닌 오로지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회사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애매한 문구만이 포함돼 있다.
새해 벽두부터 국내 대표 인터넷 기업과 바이오 업체 경영진의 주식 매매가 투자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배재현 엔씨소프트 부사장은 악재공시를 하기 전 보유주식을 모두 매도해 검찰에 고발됐고 신라젠의 문은상 대표와 친인척들은 지난해 말 217만주의 주식을 장내에 팔아 치웠다. 문 대표 혼자 판 주식만 156만주로 금액으로는 1,323억원에 달한다. 엔씨소프트와 신라젠이 동일한 사례는 아니다. 배 부사장은 불법 매매 혐의를 받고 있는 반면 문 대표는 불법이나 편법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두 회사는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경영진이 기업 경영에 중요한 시기에 주식을 팔았다는 점과 투자자들에게 불안을 심어주며 기업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점이다. 특히 신라젠 경영진의 주식 매도는 신라젠의 기업가치를 둘러싼 ‘고평가’ 논란과 맞물려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커지게 했다. 게다가 상장 후 보호예수가 끝나는 시점을 기다렸다는 듯 경영진은 주식을 팔았다. 바이오 기업 경영진의 주식 매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주식을 팔았다고 문 대표를 탓할 수는 없다. 셀트리온의 임원들은 회사를 떠나며 주식을 팔아 현금을 챙겼다. 고생고생하다 이제 한국 대표 바이오 기업으로 거듭났는데 웬 퇴사냐고 하지만 퇴사 후 당장 생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현금에 생각이 달라졌다.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버블로 매도 시점을 놓쳐 빚이 된 우리사주가 상장 폐지된 아픔을 겪은 임원들이라면 유혹은 크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인텔은 지난 3일 프로세서(CPU) 제품이 해커의 공격에 취약하게 설계됐다는 점을 공식 인정했다. 인텔은 제품 부실보다 6개월 전부터 이 같은 위험성을 인지한 상황에서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최고경영자(CEO)가 보유주식 88만9,878주를 매도한 사실에 더 큰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소비자 안전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호주머니만 생각한다”고 혹평했다.
주식을 팔아 현금을 만든 경영진은 다른 해명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창업 후 십수 년 고생 끝에 이제 겨우 차익을 실현했고 그것도 일부분만 팔았을 뿐인데 너무 심한 비난이 아니냐고 따지고 싶은 것이 그들의 속내다. 그러나 시장에 던진 경영진의 주식은 차익은 가져왔을지 모르지만 수많은 개인투자자의 신뢰도 함께 버린 것이다. 경영에 참가하는 주주라면 특히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신뢰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신뢰도 분명한 회사의 이익이다.
금융당국이 오는 11일 코스닥 활성화 대책의 구체안을 발표한다고 한다.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확대, 전용 펀드 세제혜택 등이 담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별로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정부 주도의 시장 활성화 대책은 반짝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 활성화의 답은 시장에서 찾아야 한다. 코스닥 버블 붕괴가 두렵다면 버블이 아닌 신뢰를 만들면 된다.
“버블은 요란하게 다가와 소리 없이 무너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버블이 무너지기에 앞서 시장과 신뢰가 깨어진다”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의 말을 바이오·IT 기업 경영진이 새겨두기를 바란다./hs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