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빨래집게

박규리 作

1015A38 시로여는수욜




빨랫줄의 빨래를 빨래집게가 물고 있다


무슨 간절한 운명처럼 물고 있다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어느 더러운 바닥에 다시 떨어져 나뒹굴지도 모를

지상의 젖은 몸뚱어리를 잡아 말리고 있다


차라리 이빨이 부러질지언정 놓지 않는

관련기사



그 독한 마음 없었다면

얼마나 두려우랴 위태로우랴

디딜 곳 없는 허공

흔들리는 외줄에 빨래 홀로 매달려

꾸득꾸득 마르기까지

빨래집게가 빨래를 물고 있는 동안, 빨랫줄은 처마 밑의 기둥과 마당귀의 나무를 칭칭 휘감고 있었겠죠. 목이 쓸리고 허리가 에여도 기둥과 나무는 내색도 없이 버티었겠죠. 물 먹은 빨래가 마당에 그림자 먹줄을 퉁기는 동안, 바지랑대는 불끈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겠죠. 시치미 떼고 새 떼와 잠자리 몇 마리도 앉히면서. 매달리는 재주밖에 없던 빨래는 점점 가뿐해져서 깃발처럼 나부꼈겠죠. 철부지처럼 속은 비었어도 빨래는 고마운 거라. 한사코 벌거숭이 당신을 물고 다니는 걸 보면.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물고 훌쩍 담 넘어 사라지는 것처럼. <시인 반칠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