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박근혜 정부 시절에 이뤄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로 받았던 일본 정부의 화해·치유재단 출연금 10억엔을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다만 12·28합의에 ‘중대 흠결’이 있다고 최종 결론은 내렸지만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국민 여론과 국제사회의 신뢰도 및 향후 한일관계를 동시에 고려해 이행도, 재협상·파기도 아닌 중간지점을 택한 셈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의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을 발표했다. 강 장관은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엔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이 기금의 향후 처리방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협의하도록 하겠다”며 “화해·치유재단의 향후 운영과 관련해서는 해당 부처에서 피해자, 관련 단체, 국민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후속조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강 장관은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지난 2015년 합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면서도 “2015년 합의가 양국 간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며 “이를 감안해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일본 측의 진정성 있는 태도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일본이 스스로 국제 보편 기준에 따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한결같이 바라시는 것은 자발적이고 진정한 사과”라고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자 차원을 넘어 전시 여성 성폭력에 관한 보편적 인권문제라는 점에서다.
지난해 말 위안부 합의 태스크포스(TF) 결과 발표에 이어 이날 후속조치까지 내놓았지만 명확하게 매듭지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강 장관은 “피해자 여러분들께서 바라시는 바를 모두 충족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 점에 대해 깊이 죄송하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취임 이후 계속 피해자 할머니들은 물론 관련 단체 관계자들과 직접 만나 피해자 중심의 해결책 마련에 몰두해왔다. 지난해 12월27일 TF 결과 발표 이후에도 생존 피해자 할머니 23명을 비롯해 나눔의 집 등 관련 단체를 직접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반발했다. 교도통신은 일본 외무성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가 서울과 도쿄의 외교 루트를 통해 한국의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에 대해 공식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정영현·변재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