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확장법 232조 제재 대상에 한국이 포함되자 국내 한 철강업체 사장은 “사실상 극형 선고가 떨어졌다”며 긴장했다. 이미 무차별 반덤핑·상계관세를 맞고 있는데 피할 수 없는 제재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몇년 간 세계무역기구(WTO)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정부의 보조금이나 지원(상계관세)을 받거나 과도하게 낮은 가격으로 수출하는 제품(반덤핑)에 대해 고율의 보복관세를 부과해왔다. 초고율의 관세를 때려 중국산 철강을 밀어내니 한국산이 득세한다며 미국 철강업계가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다. 미 상무부가 ‘불리한가용정보(AFA)’를 이용, 2016년 포스코 열연 강판이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고 일방적으로 규정한 뒤 포스코 제품이 유통되는 한국을 ‘비정상시장(PMS)’으로 보고 넥스틸과 세아제강, 현대제철에 대해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달 중순 결과가 나올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의 한국산 철강 무역보복 열기에 기름을 퍼붓는 조치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제품이 국가안보에 위협된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폭탄과 함께 수입물량을 제한할 수 있다. 상계관세와 반덤핑관세가 특정 국가와 특정 제품을 대상으로 한 ‘저격’이라면 무역확장법은 수입국가와 제품을 총망라해놓고 입맛에 맞게 무역보복을 내릴 수 있는 ‘기관총’에 가깝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한국을 비롯한 외국산 철강제품 수입에 232조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조사가 진행(시한 270일)됐고 결국 보고서에 한국은 제재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미 상무부는 한국산 제품이 들어올 수 있는 ‘일정수입물량(inquota)’을 정해놓고 이를 넘어선 ‘수입량(outquota)’에 대해서 초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은 제재 대상에 한국산 유정용강관(OCTG)과 송유관(WLP)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과 미국 내 셰일가스 붐으로 두 제품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유정용강관의 경우 지난해(11월 기준) 대미 수출량은 85만4,735톤으로 지난해 수출량(42만톤)보다 두 배 넘게 뛴 상황이다. 세법개정안을 통과시킨 트럼프 행정부는 내수부양을 위해 약 1조달러(1,000조원)에 달하는 인프라 투자에 박차를 가할 전망인데 그 전에 무역확장법을 동원해 중국산을 대체하고 있는 한국산 강관을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이달 중순 이 보고서를 받아든 트럼프 대통령은 90일 이내에 어떤 제품에 어떤 제재를 할지 최종 선택한다. 4월 중순께부터 한국산 철강의 추가 무역보복이 가해진다는 얘기다. 정부는 강성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를 지난 9일 현지로 급파해 제재 수위를 두고 막판 조율을 진행 중이다. 만약 최종 발동까지 제재 수위가 조절되지 않으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양국 간 통상 전쟁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와 업계가 무역확장법을 WTO 제소에 더해 행정 소송까지 가져가겠다는 입장이 세웠기 때문이다. WTO는 안보에 따른 경제 보복 조치를 △핵분열성 물질과 그 원료 △무기·탄약·전쟁도구 관련 직간접적 재화·물질 거래 △전시·국제관계 비상시 △UN헌장의 국제평화·안보 유지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한 통상전문 연구원은 “중국과 유럽연합(EU)을 건들면 역으로 무역보복을 당할 처지에서 만만한 한국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라며 “만약 보고서에 한국 철강이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논리가 허술하면 미국 법원에 소송을 걸어서 이행조치를 멈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