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고조되는 미중 무역갈등의 기운이 금융시장에 새로운 복병으로 등장했다.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조치에 따른 압박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미국 국채 매입 중단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미 국채시장이 출렁이는 등 금융시장에서 미중 간 기싸움이 벌어질 조짐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 국채 매입은 시장 행위에 따라 이루어진다”며 국채 매입 중단설을 부인하며 분명한 선을 그었지만 시장에서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 갈등 먹구름이 확산될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0일(현지시간) 중국이 미국 국채 매입 축소 또는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중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통신은 중국 고위당국자들이 최근 외환보유액 검토 과정에서 미 국채 매입을 중단하거나 매입 속도를 조절하는 방안을 권고했다고 전했다. 당국자들은 최근 채권 가격 하락으로 미국 국채시장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는데다 양국 간 무역긴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지목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 같은 보도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파장이 커지자 중국 외교부는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잘못된 정보를 인용했거나 가짜 소식일 수 있다”고 밝혔다. 루캉 대변인은 “다른 투자와 마찬가지로 미국 국채에 대한 투자는 시장 행위이고 시장 상황과 투자 수요에 대해 전문적인 관리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중국이 국채 매입 중단설을 의도적으로 흘려 트럼프 행정부에 경고 신호를 보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미 국채 매입 중단을 부인하기는 했지만 정치적 압박 카드로 이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등 부당한 무역관행을 조사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의 대통령 각서에 서명한 후 중국을 상대로 무역과 지재권 압박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는데다 새해 들어 중국에 대한 무역제재 압박을 고조시키자 중국도 이에 맞불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미 국채 1조2,000억달러(약 1,300조원)어치를 매입한 미 국채시장의 최대 ‘큰손’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중국이 매입 규모를 줄이거나 중단할 경우 미 채권가격이 급락(국채금리 급등)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에 적지 않은 충격파를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블룸버그의 보도 직후 뉴욕채권시장에서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장 초반 10개월래 최고치인 2.597%까지 치솟았다. 뉴욕증시에서도 중국의 국채 매입 중단 가능성이 악재로 작용했다. 중국이 미 국채 투자를 중단할 경우 대규모 감세안과 인프라 투자계획을 세운 미 정부의 자금조달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는 점에서 국채 압박 카드는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다만 베이징 금융가에서는 중국 경제가 호조를 보이고 외환유출도 잦아든 만큼 당장 미 국채 매각 압박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이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란창강-메콩강 협력회의(LMC) 지도자회의에서 “지난해 중국 경제 성장률을 약 6.9%로 예상한다”며 “중국 경제가 온건 발전 추세를 이어가며 채권·주식·부동산 시장이 모두 안정적으로 운영됐고 외환보유액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 2016년 초 금융시장 불안으로 자본유출 움직임이 거세지자 미 국채 매각에 나서 같은 해 10월 세계 최대 미 국채 보유국 지위를 일본에 넘겨줬지만 시장이 안정되자 지난해 8월1위 자리를 되찾은 바 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