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빨라진 퇴직시기에…스타트업 두드리는 대기업 金부장

CJ·삼성 등 40대 임원 탄생에

조기 퇴직 압박 점점 심해지고

비대면 업무 등 산업구조 변화

대기업·금융권 부장급 직원들

블록체인 기업 등으로 이직 급증

지난해 3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17 경력직-중장년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해 3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17 경력직-중장년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판교에 자리한 핀테크 스타트업 A사의 민하늘(39·가명) 대표는 지난해 말 인사·총무·마케팅 분야에서 5명의 경력 직원을 뽑기 위해 채용 공고를 냈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만 공고를 띄웠는데도 약 250명의 지원자가 몰려 취업난을 실감했다. 민 대표를 놀라게 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서류를 검토해보니 CJ·SK 등 국내 유명 대기업과 신한은행·국민은행 등 금융권에서 근무하고 있는 차장 이상 지원자만 120장이 넘었던 것. 그들의 평균 나이는 45세였고 해외 MBA 출신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 최근 정보기술(IT) 교육 스타트업 B사가 진행한 채용 면접에서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블라인드 서류 전형을 거쳐 면접장에 들어온 두 명의 지원자가 같은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부장과 차장으로 선후배 사이였던 것이다. 면접이 시작된 후 둘 사이에서는 어색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면접이 진행되면서 자기소개서에 쓴 중소기업과의 프로젝트 사례가 겹쳐 어색함은 더욱 심해졌다. B사의 인사팀장은 “나이로 차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블라인드 방식을 채택했더니 40~50대 지원자가 부쩍 늘었다”며 “특히 퇴직을 앞두고 이직하려는 중참들의 지원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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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으로 이직을 준비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나 금융권의 고참 직원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대기업이나 은행 출신이 협력업체나 거래처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가 종종 있었으나 지금은 아예 스타트업으로 옮기며 이직의 폭과 범위가 확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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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은 물론 각종 복지가 줄어드는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이 스타트업에 몰리는 것은 빨라진 퇴직 시기와 맞물린다. 지난해 CJ그룹에서는 40세 상무가, 삼성디스플레이에서는 42세 상무가 탄생하면서 4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 직장인들의 조기 퇴직 압박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1,4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사기업에서 회사생활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나이는 48.8세로 나타났다.

산업구조의 변화도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모바일이나 비대면 서비스 확산 등으로 오프라인 영업점을 줄이면서 은행권의 희망퇴직 바람은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이다. 올해 신한은행은 1978년생을 기준으로 만 40세 이상이면 희망퇴직 대상자로 분류했다. 시중은행에서 일하다가 나와 스타트업으로 옮겨 4년째 근무하는 이성한(41·가명) 씨는 “예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면 핀테크 기업, 인터넷 은행, 블록체인 등 IT 분야 스타트업으로 갈아타야 한다”며 “우리 회사에서 채용 공고가 나면 미리 알려달라는 요청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지원자의 급증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대기업이나 금융권 중참들이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이들의 채용을 망설이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민 대표는 “평균적으로 직원들의 연령대가 낮은 편이다 보니 차장급 이상 지원자를 뽑았다가 이질적인 문화와 가치관 등 세대 차이로 서로 고통 받을 것 같아 조심스럽다”며 “매출 규모만 생각하고 만만하게 보면서 ‘내가 너희를 도와주겠다’는 인식을 가진 지원자들도 상당수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변지성 잡코리아 팀장은 “직장 생활에서 관리자로 있다가 시스템이 세팅되지 않은 스타트업으로 옮겨서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하려면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며 “자기소개서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소개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이직 성공률이 높아진다”고 조언했다.

백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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