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당국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수능시험의 절대평가 전환을 추진하다 백지화하더니 이번에는 미취학 아동의 영어교육에서 사달이 났다. 초등학교 1~2학년 방과 후 영어교육 금지에 맞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도 그렇게 하려다 3주 만에 전면 재검토란다. 교육부는 새 정부 출범 후 강력한 원투펀치를 맞고 정책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느낌이다. 지지율 70%가 넘는 현 정부에서 유독 교육만큼은 정부 지지도를 갉아먹고 있으니 교육 수장 교체론이 고개 들지 않으면 되레 이상할 것이다.
문제의 화근은 어디에 있는가. 좋은 말로 하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요, 시쳇말로 하면 탁상정책이 빚어낸 참극이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이상론에 사로잡힌 채 일선 학교가 교육 수요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한 탓이다.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를 보자.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맞벌이 부부의 최대 고민거리는 아이를 얼마나 오랫동안 돌봐줄 수 있느냐다. 대략 오후 3시면 끝나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맞벌이 부부로서는 방과 후 학습이야말로 동아줄이나 다름없다. 사교육에서는 수십만 원 드는 영어학습인데 3만원이면 된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는 공교육 정상화 또는 선행학습 금지라는 거창한 이상론은 통하지 않는다. 지난여름을 달군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 역시 교육 현장의 현실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 절대평가로 바꾸기만 하면 저절로 고교 내실화를 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이제는 공교육 정상화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일선 학교를 입시기관으로 전락시키지 않아야겠지만 사교육 수요를 어떻게 공교육 차원에서 흡수할지를 검토하라는 얘기다. 공교육 정상화를 외친 지 올해로 몇 년째인가. 중학교 무시험제가 도입된 1969년 이후 벌써 48년째다. 그렇다고 해 사교육 열풍이 준 것도 아니다. 학생 수가 2010년 대비 20% 줄었는데도 2016년 1인당 사교육비용은 같은 기간 7% 늘었다.
난제를 풀자면 공교육 실패부터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불편한 진실 앞에서 교육당국은 좀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1999년 DJ 정부 이후 3불 정책은 입시정책의 금과옥조였지만 기여입학제 금지를 제외하고는 고교등급제와 본고사의 금지는 사실상 무력화했다. 입학사정관은 사실상 고교의 서열을 인정하고 있다. 출신 고교의 특정 대학 진학 비율, 이른바 ‘트랙레코드’가 중요한 사정 기준임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학종의 면접은 어떤가. 본고사 금지 규정상 필답 고사만 치르지 않을 뿐 본고사와 진배없다. 수학은 구술로 문제로 풀고 영어 원문의 이해력을 묻는 것이 학종의 면접이다.
이상과 현실이 따로국밥이어서는 교육 난제를 풀 수 없다. 창의성 배양과 잠재력 발굴, 융합적 사고력 같은 것들은 구구절절 옳지만 그 결과 ‘개천의 용’은 멸종 위기에 직면했다. ‘이해찬 시대’를 거쳐 위기 조짐이 보이다 수시 전형에다 입학사정관이다 뭐다 해서 꼬아놓은 대학입시는 가난한 수재들이 설 땅을 잃게 만들었다. 백년대계여야 할 교육정책이 일관성이라도 유지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올여름 교육부가 내놓을 입시제도 개편안은 현 정부 교육정책의 시금석이라는 의미가 있다. 모든 교육정책의 최정점에 있는 입시 개편은 공교육의 기본 골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문재인 대통령이 “입시는 단순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깔끔하게 정리했음에도 어쩐지 미덥지 못하다. 6월 지방선거만 피하고서는 허울뿐인 고교 내실화 원칙을 또다시 들이댈 것 같아서다.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도 시간벌기용 유보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것이 1년씩이나 질질 끌 사안인지부터 의문이다.
교육 수요를 공교육에서 흡수하지도 못한 채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는 것은 희망고문이나 다름없다. 수험생 1등부터 60만등까지 줄 세워 대학 가는 방식이 차라리 낫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참회록을 쓰는 심정으로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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