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5시30분께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미리 작성한 성명서를 읽어내려가며 입장을 밝혔다. “송구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운을 뗀 이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서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국정수행에 임했다”며 “퇴임 후 5년 동안 4대강 살리기와 자원외교, 제2롯데월드 등 여러 건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함께 일했던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어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며 검찰 수사를 향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자신과 측근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는 ‘정치보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보수 궤멸’ ‘노무현’이라는 표현을 언급, 보수층을 결집해 지금의 위기를 정치력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전 대통령은 “최근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며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이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향해서도 “나에게 책임을 물으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내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나에게 있다.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이 아닌 나에게 책임을 물으라는 게 오늘의 내 입장”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성명서 낭독 이후 질문을 받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건물을 나서던 이 전 대통령은 ‘특활비 보고를 따로 받았느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차량에 올랐다.
청와대는 별도의 공식 논평 없이 말을 아꼈다. 자칫 전·현 정부가 각을 세우는 모양새로 보일 수 있는데다 보수층의 결집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학생 리더십아카데미’ 강연을 마친 뒤 이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법적 절차대로 하겠다”고 짧게 답했다. 이 전 대통령 입장에 대한 수사 부담, 소환 여부 등 각종 질문에도 똑같은 입장을 반복하며 말을 아꼈다. 이는 이 전 대통령 측의 표적·기획수사라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밝힌 검찰의 기존 입장과 같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치적인 발언에 수사 주체인 검찰이 감정적이나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건 금기시되는 사안”이라며 “수사를 원칙대로 한다는 입장이 혹시 있을 수 있는 비판여론에 가장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송주희·류호·김민정기자 rh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