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감정노동에 불을 붙이는 언어습관

작가

'손님이 왕'이란 권위적 사고

과도한 경어체·존칭 사용 유도

감정노동 악순환 끊어내려면

직원의 존중받을 권리 지켜야

정여울 작가정여울 작가


‘얼마나 험한 일을 겪었으면 이런 문구를 붙여놓을까’ 싶을 때가 있다. 제주도의 한 빵집에 갔다가 이런 문구를 적어놓은 메모를 보았다. “반말은 삼가해주세요.” “돈과 카드는 던지지 않는 센스!” “주문은 끝까지 해주세요!” 계산대를 지키는 점원에게 반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사람들, 돈이나 카드를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며 불쾌감을 주는 손님들, 주문도 끝까지 하지 않고 대충 말하고 휙 가버리는 손님들 때문에 점원들은 얼마나 감정노동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을까. 특히 “반말은 삼가해주세요”라는 문장 뒤에는 울고 있는 모양의 “ㅜㅜ”라는 이모티콘이 붙어 있어 점원들이 느꼈을 마음의 상처가 더욱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손님은 갑, 무조건 손님이 왕’이라는 식의 권위적인 사고방식이 이런 폭력적인 언어습관을 낳은 것이다.

2015A27 정여울


“점원과 손님의 접촉을 차단하는 언택트(untact) 마케팅이 대세”라는 내용의 최근 신문 기사 또한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접촉을 뜻하는 컨택트 앞에 부정의 접두사 un을 붙인 신조어, untact는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다. 물론 점원의 개입 없이 조용하게 혼자 구매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하는 손님들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언텍트 마케팅이 대세’라며 점원의 개입 자체를 막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닐까. 정말 점원의 도움 없이 인공지능 로봇을 등장시켜 최소한의 개입만 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마케팅인가. 점원없는 매장에서 로봇이나 기계만을 상대해야 하는 낯선 상황에 당황하는 손님들도 많을 것이다. 기업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런 사고방식은 점원뿐 아니라 손님의 마음에도 상처를 준다. 손님들은 점원의 과도한 개입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지 친절하고 배려심 깊은 서비스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존댓말이나 경어체의 사용을 유도하는 문화도 손님과 점원의 거리감을 가중시킨다. “주문하신 음식 나오십니다!”라는 식의 문장을 직원들에게 교육시키는 문화는 손님뿐 아니라 음식에까지 과도한 높임말을 씀으로써 손님과 점원의 거리감을 가중시킨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같은 과잉된 애정표현 또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은 손님과 고객 사이에 어울릴 만한 단어가 아니지 않은가. 이런 과도한 표현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지닌 본래의 의미마저 퇴색시킨다. 존중과 배려면 충분한 상황에서 친밀한 관계에나 어울릴 만한 애정이나 과도한 극존칭을 요구하는 직원교육은 손님과 점원 사이의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격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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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존칭과 높임말은 많은 부분 권위주의와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집단적 심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손님과 점원 사이의 관계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과도한 높임말이나 불편한 경어체가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내가 관여하고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자긍심’이다. 직원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진정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직원들의 복지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는 기업, 손님의 ‘대접받을 권리’만큼이나 직원의 ‘존중받을 권리’ 또한 잊어버리지 않는 손님의 태도가 이런 감정노동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경어체나 존댓말이 엄격한 사회일수록 일상적인 감정노동이 과도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이며, 미처 일상 속에서 처리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뒷골목에 범람하는 사회임을 지적한다. 자신의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다른 서비스 업종의 점원에게 화풀이하듯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결국 감정노동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는 사회가 아닐까. 모든 감정노동의 스트레스를 아랫사람이나 부하직원에게 떠넘기는 사회는 결국 일상 속의 민주주의는 물론 솔직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꽉 막힌 사회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광수의 ‘흙’에는 주인공 ‘숭’이 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순사 앞에서 용감하게 맞서는 장면이 나온다. 순사가 숭에게 “당신 무엇이오?”하고 위협적으로 묻자, 숭은 당당하게 말한다. “나 사람이오” 순사는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하며 숭의 따귀를 갈기지만, 숭은 굽히지 않고, ‘나는 그저 사람이기에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증명한다. 바로 이런 용기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최고의 무기이며, 존댓말이나 높임말보다도 인간을 더욱 아름답게 존중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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