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영수’라고 호칭한 평론기사가 등장했다. 영수는 중국 공산당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오쩌둥에게만 붙였던 칭호다. 위대한 영수라는 수식어는 1977년 마오 사후 당장(당헌)에 정식으로 삽입되기도 했지만 1978년 덩샤오핑이 정권을 잡은 후 개인숭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중국 정가에서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일부 참석자들이 시 주석에게 영수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중국 공산당의 목소리인 인민일보가 공개적으로 영수라는 표현을 쓴 것은 마오 이래 처음이다.
중국이 덩샤오핑 집권기에 제정된 헌법 틀을 흔들며 시 주석의 ‘만년 황제’ 꿈에 한발 더 다가서고 있다. 지난해 당대회에서 자신의 이름이 붙은 사상을 당헌에 명기하며 무소불위 황제의 용상에 오른 시 주석은 19일 폐막한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2차 전체회의(19기2중전회)와 3월로 예정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아직 이루지 못한 절대권력의 마지막 퍼즐 맞추기에 나선다.
전인대는 중국 정가의 최대 연례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중 하나로 중국의 국정운영 핵심정책들이 인민대표의 의결을 통해 확정돼 공식 발표된다. 올해는 지난 당대회에서 당장에 삽입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이 헌법에 명기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관심사는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금지한 규정이 과연 삭제되느냐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날 폐막한 19기 2중전회에서 중국 지도부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헌법 명기안을 통과시켰다. ‘시진핑 사상’이 담긴 새로운 국가 헌법안이 3월 전인대에서 최종 의결되면 공산당원뿐 아니라 중국인 전체의 중심사상과 이념으로 시 주석의 철학이 자리 잡게 된다.
중국이 현행 헌법 개정 논의에 돌입한 것은 2004년 이후 약 14년 만이다. 1982년 덩샤오핑 집권기에 제정된 중국 헌법은 이후 네 차례 개헌을 거쳤지만 최고지도자의 권력독점과 독재자 출현을 막기 위한 국가주석 3연임 제한 규정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해왔다. 하지만 베이징 정가에 따르면 이번 2중전회에서는 국가주석 3연임을 금지한 헌법 조항 개정 문제도 논의됐다.
현행 중국 헌법 79조는 5년인 국가주석의 임기가 전인대 두 회기(10년)를 넘어설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집권 후반기 5년 임기 마지막 해인 오는 2022년 이후에는 절대 황제의 권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만약 3월 전인대에서 확정되는 14년 만의 개헌에서 국가주석 임기 규정이 삭제될 경우 시 주석은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하고 임기 5년의 시한부가 아닌 만년 황제의 권력을 노릴 수 있다. 이번 2중전회에서 3월 전인대로 이어지는 정치 이벤트가 시 주석의 장기집권 청사진을 그리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3월 전인대에서 시진핑 사상과 국가주석 3연임 제한 규정을 삭제한 헌법이 통과될 경우 1978년 중국 공산당 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1기 3중전회)에서 대권을 공식적으로 확인받은 덩샤오핑이 후배 중국 지도자들에게 신신당부하며 남긴 세 가지 유산이 무너지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덩 집권 이후 40년 만에 개혁개방과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 집단지도체제, 선부론 등으로 상징되는 그의 3대 유지가 사실상 허물어지는 것이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사실 덩샤오핑이 1978년 개혁 개방을 처음 추진할 때 제시한 개념이다. 당시 덩은 산업화를 통한 선부론(先富論·먼저 부자가 되자)을 강조했다. 선전경제특구가 필연적으로 발생시킬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도 덩은 “먼저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부자가 되면 그들이 다른 이들도 이끌어 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반면 시 주석이 ‘신시대’를 덧붙이며 제시한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공부론(共富論·같이 부자가 되자)을 내세운다. 시진핑 국정운영의 핵심 구호인 ‘샤오캉(小康) 사회’는 덩이 주장한 선부론의 병폐를 도려내는 공개 처방전이기도 하다. 샤오캉은 중산층을 뜻하는 말로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는 전 국민의 평등과 복지를 중시해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중국 당국이 선전경제특구의 검문소와 울타리를 철거하며 물리적인 장벽을 제거한 것도 사실상 덩의 선부론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였던 셈이다.
시 주석이 강조하는 대외정책도 덩샤오핑 시대와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덩은 1991년 옛소련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자 지도자들과 함께 향후 중국 정국운영 방향을 논하면서 ‘도광양회를 지시했다. 서방 국가들과 힘겨루기에 나서기는 이르니 ‘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다. 집권 이후 도광양회를 거의 언급하지 않은 시 주석은 지난가을 당대회를 기점으로 노골적으로 ‘분발유위(奮發有爲·분발해 성과를 이뤄낸다)’ 대외정책을 부추기고 있다. 시 주석이 당대회에서 새로운 외교전략으로 ‘신형국제관계’를 내세우면서 “어떤 나라라도 중국이 자국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쓴 열매를 삼킬 것이라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사실상 덩의 도광양회에 대한 종언으로 해석된다.
덩샤오핑 유산 지우기의 핵심 키워드는 그가 확립해놓은 중국식 집단지도체제, 후계자 격대지정(隔代指定·차차기 후보자를 미리 지정하는 것)의 폐기다.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폐해를 절감한 덩은 집권하자마자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난 당대회에서 시 주석은 차기 상무위원을 모두 60대로 지정하며 전임 후진타오 시대에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로 내정됐던 인물들을 내쳤다.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회도 자신을 보좌하는 총서기 참모조직으로 채워 집단지도체제를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버렸다. 이번 전인대를 통해 국가주석 3연임 규정을 헌법 전문에서 들어낸다면 사실상 덩샤오핑이 우려한 만년 황제 출현이 현실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시 주석이 덩샤오핑의 유훈을 거부하고 미국에 맞설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중국 정가의 오랜 전통과 견제세력의 반발 속에 이 같은 시 주석의 꿈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베이징 정치평론가인 역사학자 장리판은 “지도자의 신전에 모셔지고 싶어하는 시진핑의 권력이 막강하다 해도 문화혁명 이후의 중국 정치 역사를 보면 장기집권 부활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