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바이오굴기’가 낮은 규제장벽과 밀려드는 투자금,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가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복제약 생산기지 정도의 수준에 그쳤던 중국이 바이오 분야를 미래 신성장 산업으로 정한 정부의 파격적인 육성 정책과 해외 유학파들이 가세한 연구개발(R&D) 성과 등을 바탕으로 생명공학 분야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2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항저우 암전문병원에 소속된 우쉬슈 박사 연구팀은 최근 중국인 암 환자를 대상으로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이라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편집 시술을 준비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는 고치고 싶은 유전자만 잘라 교정하는 바이오기술이다. WSJ는 DNA를 편집할 수 있는 크리스퍼-카스9은 중국 외의 국가에서는 인간 대상 임상실험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벽에 부딪쳐 있다. 미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의 경우 2년간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반면 중국에서는 이미 최소 86명의 환자가 유전자 편집 임상시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중국이 유전자 가위 기술의 선두 국가로 부상한 데는 지난 2016년 시작된 13차 5개년 규획(2016~2020년)에서 유전자 편집 등 생명공학기술을 신성장 산업 핵심 분야로 선정한 지원 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밝혔다. 중국은 2020년까지 바이오테크 분야 시장을 국내총생산(GDP)의 4%로 키운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 기간 중국 전역에 10~20개의 생명과학 단지를 건설하기로 했다.
미 펜실베이니아대 유전자 가위 연구팀의 칼 준 박사는 “미국과 중국은 유전자 가위 분야에서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며 “규제 영향으로 미국은 유전자 가위 분야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중국에 넘겨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전 세계에서 실시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관련 임상시험은 모두 10건으로 이 중 9건이 중국에서 진행됐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최근 발간한 ‘중국의 디지털 경제’라는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규제 해제 정책이 바이오, 정보기술(IT) 분야 등 첨단 산업 굴기의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유전자 가위는 물론 줄기세포 연구 등은 한국과 미국에서 엄격한 통제를 받지만 중국에서는 뚜렷한 규제가 없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도 소속 기관의 허가만 받으면 허용된다.
중국 정부의 바이오 육성 정책에 힘입어 관련 해외 유학파들의 귀국 움직임과 기업 활동도 활발하다. 지난 6년간 귀국한 200만명의 해외 유학파 가운데 25만명은 생명공학 분야 인재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지원과 투자금이 몰리면서 중국 바이오테크 기업들의 실적도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나스닥에 상장된 중국 바이오 기업 베이진은 지난해 9월 개발 중인 항암제의 해외판매권을 미국 대표 바이오 기업인 셀진에 2억6,300만달러에 넘겼다. 개발이 완료되면 향후 단계별로 총 9억8,000만달러를 더 받을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제약업체들이 해외 벤처 투자와 기업공개(IPO), 다국적 제약사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지난해 10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 바이오 기업들의 IPO 시장 활약도 두드러진다. ‘차이-메드’로 알려진 ‘허치슨 차이나 메디테크’는 지난해 런던 증시에서 주가가 2배 이상 뛰었다.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6월 홍콩 증시에 상장한 후 주가가 현재 160%가량 올랐다. 홍콩 증시에 2년 전 상장한 중국 바이오 투자회사 젠스크립트는 상장 이후 주가 상승률이 580%에 달했다. 바이오 분야 사모펀드 투자 규모도 최근 2년간 급증 추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15년 3억3,800만달러 수준이던 중국 바이오 시장 사모펀드 투자 규모는 2016년 10억달러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1억달러를 기록했다.
통신은 “중국 정부는 적극적인 바이오테크 지원만이 신성장 산업 분야의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서 “정부의 이 같은 육성책에 힘입어 중국이 바이오테크 분야에서 승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