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新남방정책 금융이 이끈다①-2] 현지진출 기업에 맞춤 자금지원…하나금융 '동남아 핏줄' 역할

<1> 아세안 네트워크 강화하는 금융권

현지 은행에 노하우 전수…외환서 대출·수신 원스톱서비스

文정부 정책 맞물려 금융사 인수합병 등 현지화도 가속



지난해 제조업을 영위하는 A사는 인도네시아 현지회사 경영권 확보를 위해 싱가포르에 법인을 설립했다. 이때 지분 매입을 위한 자금을 인도네시아 루피아화(IDR)로 송금해야 했지만 적정 환율로 대량의 IDR를 확보할 수 있는 은행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A기업이 처한 고민을 접한 KEB하나은행은 본점의 외환파생상품운용부와 인도네시아 법인, 싱가포르 지점을 연계해 IDR를 필요한 만큼 확보했고 싱가포르 법인으로 즉시 금액을 보내 인수합병(M&A)을 도울 수 있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아세안 국가 구석구석에 진출한 금융사들이 하나금융 사례처럼 우리나라 기업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현지 진출과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회사들이 낯선 동남아 국가에 진출해 금융의 도움이 절실한데 우리 은행들이 다양한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통해 서비스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진출 국가들에 선진 금융 기법을 전파하는 데도 열심이어서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금융사들의 아세안 네트워크는 날이 갈수록 더욱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은행의 아세안과 인도 지역 점포는 무려 74개에 달하며 보험과 카드·캐피털사도 각각 22개씩 있다. 또한 현재 사무소나 지점인 곳은 속속 법인으로 전환해 네트워크를 넓히고 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신한금융(신한인도네시아은행), 하나금융(PT뱅크KEB인도네시아), 우리은행(우리소다라은행)이 현지 은행을 인수해 영업을 하고 있다. KB금융과 농협금융·IBK기업은행은 인도네시아 진출을 위해 현지 금융사 인수를 추진 중이다.

베트남도 국내 금융사의 진출이 눈에 띄는 국가 중 하나다. 신한베트남은행은 국내 금융사의 해외 진출 성공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ANZ은행의 베트남 소매금융 사업 부문을 인수해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월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농협금융과 KB금융은 각각 베트남 우리CBV증권과 매리타임증권을 인수해 현지 증권시장에 진출했다.


필리핀은 국내 은행권의 진출이 다소 뒤처졌지만 성장률을 감안하면 국내 은행들의 진출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필리핀에는 우리은행만 현지 저축은행 웰스디벨롭먼트뱅크의 지분 51%를 사들여 소매금융업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신한금융이 현지 이스트웨스트은행 지분 20%를 인수하는 방안을 두고 협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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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의 동남아 국가 진출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을 순방하면서 “아세안과의 협력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신남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며 무역뿐만 아니라 기술과 문화예술·인적 교류 확대를 선언한 후 더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이 금융의 지원 없이 단독으로 해외에 진출하기는 어려운 만큼 교역량의 증가와 한국 기업의 아세안 진출 확대는 국내 은행 산업의 동반 지출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의 신남방정책에 따라 교역량이 확대되고 한국 기업의 현지진출이 늘면 국내 은행의 현지 안착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며 반겼다.

이 때문에 금융권의 현지 M&A도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금융은 최근 푸르덴셜 베트남 소비자금융 부문을 인수했으며 다른 아세안 국가에서도 적극적으로 매물을 찾고 있다. 농협금융도 동남아 금융벨트 구축을 목표로 적극적인 인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신한금융의 한 관계자는 “한국과 같은 금융그룹을 각 국가마다 차근차근 만들어가자는 전략”이라고 전했다.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하려면 한국에 있는 자본을 이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지에서 자금을 대출 받거나 번 돈을 다시 한국으로 송금할 때에 전부 금융사의 도움을 빌릴 수밖에 없다. 즉 외환은 물론 대출·수신까지 원스톱으로 서비스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인건비 상승으로 공장을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등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 과정에서 금융사의 중국 지점과 동남아 현지 지점과의 연계 서비스는 필수적이다. 또한 한국 금융사는 현지나 글로벌 금융사에 비해 해당 기업의 신용상태와 재무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도움을 적시에 공급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보통 금융사들은 한국 모기업과의 관계가 긴밀하기 때문에 기업이 어려워질 때 비 올 때 우산을 뺏기보단 더욱 신경 써서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한국 금융사들은 해당 진출 국가의 경제 발전과 금융 선진화에도 적극적인 도움을 주면서 한국 이미지 쇄신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히 자금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 개인 여신은 물론 기업금융 등의 체계가 미비한 아세안 국가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현지화를 목표로 해 현지 인력 채용을 늘리고 있으며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연수의 기회도 최대한 제공하고 있다. 임형석 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신남방정책으로 우리 정부와 각국 정부 간 스킨십이 확대되면 금융사의 해외 진출과 현지 영업에도 우호적인 여건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이라며 “최근 들어 금융사들이 추진하고 있는 아세안 현지 금융사 M&A 등 현지화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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