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약 ‘노루모’와 자양강장제 ‘원비디’ 등을 통해 제약보국과 국민건강을 실천한 일양약품(007570)의 창업주인 정형식(사진) 명예회장이 지난 27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국내 제약업계 창업세대 가운데 최연장자로 한국 제약사의 산증인이었던 고 정 명예회장은 17세이던 지난 1938년 약방을 경영하며 제약업계에 몸을 담았다. 1946년 일양약품의 전신인 공신약업사를 창업한 후 1957년 일본 제약서적을 탐독하고 위장약 ‘노루모’를 개발해 시장 1위 제품으로 키워냈다.
노루모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정 명예회장은 1971년 드링크제 ‘원비디’를 출시해 동아제약 ‘박카스’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자양강장제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원비디는 지금도 연간 450억원어치가 팔린다. 중국에서만 매년 3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외산 의약품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국내 제약산업의 현실에 안타까워했던 고인은 신약 개발에도 앞장섰다. 당시 외산 제품이 주도했던 항궤양제 시장을 겨냥해 차세대 항궤양제 신약 ‘놀텍’을 개발하고 국산 신약 14호 인증을 받았다. 이어 아시아 최초의 백혈병 치료제인 ‘슈펙트’를 개발하는 등 신약 개발에 평생을 바쳤다. 1960년대부터 최신식 생산시설을 도입하며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한 것이 신약 개발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평생 ‘제약 외길’을 걸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정치와 기업은 모두 정도를 택해야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다”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제약사업에 주력했다. 기업이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사회가 발전하고 후대에 귀감이 될 수 있다는 신념에서였다.
고인은 생전에 척박했던 국내 제약산업을 글로벌 무대로 이끌기 위해 대외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회장과 대한약품공업협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대한상의 제13대 상임위원, 한·방글라데시 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 의약품 성실신고 회원조합 이사장 등을 거쳤다.
소외된 이웃을 돕는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정도경영을 통한 기업의 이익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게 정 명예회장의 소신이었다. 고인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상 수장, 금탑산업훈장, 수출유공 표창, 보건사회부장관 표창, 노동부장관 표창, 재무부장관상, 적십자봉사장 금장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 삼성병원 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30일 오전8시30분에 한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영자 여사와 장남인 정도언 일양약품 회장을 비롯한 4남 1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