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권오경 공학한림원 회장 "4차혁명 선도하려면 퍼스트무버보다 게임체인저 키워야"

[서경이 만난 사람-권오경 공학한림원 회장]

창의적 인재 육성하고 '실험적 창업' 맘껏 할 수 있는 환경 조성

국가 R&D 사업 자율성 확 높여 혁신적 과제 발굴하는데 중점

자율차 도심운행도 쉽지않아...미래 먹거리 과감한 규제혁파를





동장군의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친 지난 25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IT·BT관 12층. 보통 각 교수 연구실로 나뉘어진 여느 건물과 달리 이곳은 권오경(63)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팀이 한 층을 연구·실험실로 통째로 쓰고 있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의 대가로 꼽히는 권 교수는 예산을 받는 정부 연구과제를 거의 하지 않고 삼성전자·LG전자·SK하이닉스 등과 산학협력을 골고루 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외특허만도 300건 이상에 달해 국내외에서 매년 특허료로만 억대를 받을 정도이니 가능한 일이다.


산업계와 학계가 뭉친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인 그는 실험실을 안내하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퍼스트무버(first mover)보다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신제품이나 기술을 빠르게 추격하는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에서 벗어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기술과 시장으로 가는 퍼스트무버로 거듭나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판을 뒤흔들어 시장 흐름이나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게임체인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애플의 아이폰,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등을 들 수 있는데 그는 가장 잘하고 있는 게임체인저로 전자상거래를 기반으로 미디어콘텐츠·클라우드 서비스·사물인터넷(IoT)시장 개척까지 새로 룰을 써온 아마존을 들었다.

대담·정리=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그는 “게임체인저로 탈바꿈하려면 굉장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신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대열에서 중국에 밀리는 상황에서도 아직은 꿋꿋이 앞서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도 게임체인저가 되지 않고는 장비·소재산업까지도 엄청나게 투자하는 중국에 언젠가 추월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인텔의 매출을 넘어선 것은 쾌거이지만 게임체인저로 거듭나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가 메모리반도체는 걱정이 덜하지만 5개의 시스템반도체 쪽은 중국보다 못하는 분야가 많고, 또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용칩 파운드리에 들어가는 AP(휴대폰용 중앙처리장치)는 잘하고 있지만 나머지 영역은 개척해야 한다”며 “휴대폰과 TV 등에 적용되는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와 접이식 디스플레이로도 빨리 옮겨가 앞서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대한 경계감도 나타냈다. 그는 “디스플레이와 액정표시장치(LCD)의 경우 출하량은 한국이 많지만 중국은 생산시설이 월등해 올해 물량 면에서 추월당할 것”이라며 “대형 TV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우리가 훨씬 앞서 있고 휴대폰용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패널도 중국이 설비를 구축하고 있으나 아직 수율이 안 나와 국내 업체가 주도하고 있지만 얼마나 갈까 고민된다”고 털어놓았다. 엔비디아의 AI 칩처럼 다양하게 많이 쓰일 수 있는 분야를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게임체인저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으로는 창의적 인재육성, 연구개발(R&D) 시스템 혁신, 기업의 지적재산권(IP) 인식 개선, 4차 산업혁명 성공을 위한 정부의 규제혁파를 내놓았다.


그는 “초중고·대학의 교육 시스템이 잘못돼 있는데 이를 혁신하지 않으면 창의적 마인드를 가진 인재를 키우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기계처럼 외우는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이 발표하고 실험하는 것을 교사와 교수는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초중고에 실력 있는 과학교사가 부족해 재미있게 가르치지 못하고 대학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교에 물리전공 교사가 없어 물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전자공학과에 오는 학생들도 많아 입학 전(2월) 물리를 미리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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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초중고생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고 학교에서는 주입식 교육을 해 의욕과 흥미를 잃게 된다”며 “일부라도 제대로 원칙을 이해하고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응용력이 생기는데 우리 대학생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한탄했다. 미국은 고교 때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 대학에 오는 학생도 있는데 초중고에서 기초를 튼튼하게 가르쳐 대학에서 2~3주만 가르치면 금방 따라와 스스로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부모는 자녀의 대학입학에만 집중하지 창의력을 키우는 데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다 심지어 대학생 자녀가 창업한다고 하면 강력하게 반대하고 학생들도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해 도전적인 ‘실험실 기업’ 창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권 회장은 “우리가 너무 공정성과 공평성을 강조하다 보니 대학입시나 국가 R&D 등에도 왜곡되는 게 많다”며 “대학입시만 해도 미국처럼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주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각자 특성 있는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R&D 혁신에 관해서는 “국가 연구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위권이라는데 예비타당성 검토(500억원 이상 과제)를 거치고 과제 선정 시 공정성·형평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세계적 트렌드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1년 후도 제대로 못 볼 정도로 상황이 급변해 창의성 있는 과제 발굴이 힘든 만큼 연구자의 실적을 보고 자유롭게 연구하도록 맡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예타에서 경제성에 비중을 둬 손쉬운 과제만 하는 쪽으로 왜곡되는 문제도 바로잡고 신진연구자는 R&D비 몫을 따로 둬 실적을 쌓도록 밀어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학교나 정부출연연구원에서 기술을 이전할 때 중소·중견기업은 기술을 줘도 받아갈 사람이 없는 현실도 토로했다. 권 회장은 “미국은 트랙레코드(track record)가 좋은 연구자가 제안하면 지원하면서 독촉하지도 않고 5~10년을 기다린다”며 “연구자도 중간에 계획도 바꿔가며 명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엄청 노력하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용인하는 시스템”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애플도 미국 정부에서 인터넷 등 국방용으로 많은 국가연구가 이뤄진 것을 기반으로 사업화에 성공했다”며 “역으로 기업이 먼저 연구하고 국방을 위한 것이라고 증명하면 50~100%를 정부가 돌려주는 게 미국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의 낙후된 IP 인식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중국의 일부 기업들이 내게 ‘협업하자’며 돈을 많이 준대도 안 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우리 기업은 외국 기업과 달리 힘들게 개발한 특허를 헐값에만 차지하려 한다”며 인식 개선을 촉구했다. 공학한림원이 오는 3월 각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IP 전략포럼을 열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아가 공학한림원에 미래위원회를 둬 조선 산업은 진짜 내줘야 하는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산업은 뭔지, 어떻게 4차 산업혁명에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할지 등에 관해 정책제안을 하기로 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형태 변화와 교육개혁 연구를 위해 위원회도 공학한림원 산하에 꾸렸다. 그는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열린 ‘과학기술과 사회(STS)’ 포럼에 참석했을 때 아베 신조 총리가 ‘신산업이 정착할 때까지 모든 규제를 풀겠다,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한 것을 청와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금 AI나 IoT를 한다고 굉장히 말은 많은데 제대로 안 되고 있고 자율주행차 역시 도심 내 시범운행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각종 신산업의 발전을 막고 있는 규제타파를 촉구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줄기세포 중증환자 임상실험을 허용해 노벨상까지 탔는데 우리는 막고 있어 줄기세포 치료를 일본이나 중국에서 받고 있는 실정이고 미국에 갈 때마다 대도시 슬럼가가 스마트홈 등 스마트시티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된다고 비교했다.

권 회장은 “과거 갤럭시폰에다 신체리듬 센싱 기능을 넣으려다가 규제로 인해 못했던 경험이 있다”며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디지털혁명의 연속선에 있어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고, 과거 산업혁명 때도 많은 저항이 있었지만 결국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겼다”며 과감한 규제혁파를 주문했다. 청년들이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여전히 의대로 인재가 몰리는데 바이오·생명과학 연구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공대 활성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사진=이호재기자



he is △1955년 경남 고성 △1978년 한양대 전자공학과 학사 △1980년 금성전기 연구원 △1983년 미 스탠퍼드대 유학(전기공학 석·박사) △1987년 미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책임연구원 △1992년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2008년 한양대 공대 학장 △2010년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장 △2011년 한양대 교학부총장 △2011년 공학한림원 부회장 △2014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2015년 공학한림원 상임부회장 △2017년 공학한림원 회장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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