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이젠 멀리 가야 하기에 같이 가야 한다

이영 테르텐 대표

이영 테르텐 대표


월요일 아침 회사 주차장 쪽으로 향하던 나는 순간 마음이 얼어붙었다. 지난주까지도 유인 주차요금 정산 부스가 있었는데 주말 깜짝 공사로 무인 자동 개폐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일자리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후일 건물관리인을 통해 최저임금 상승으로 이참에 자동화 기계를 도입했다는 불편한 설명을 들었다. 얼마의 경비를 절약했는지 모르나 우리는 하나의 온기를 잃었다.

올 연말 인사철에도 예외 없이 임원을 달고 있던 선배들이 불시에 권고사직을 당했다. 이제 한참 일할 50대 초반이지만 대한민국에서 50대가 일할 수 있는 기업의 수는 많지 않다. 인간의 수명은 드라마틱하게 늘고 있지만 현장에서 정년이 점점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조직개편이라는 명분으로 인건비 부담이 큰 50대 전후 인력들을 정리하는 동안 이들의 축적된 노하우는 소리 없이 사장돼가는 듯 보였다.

필자가 비상임이사로 있는 모 기관의 이사장께서 개인 신변의 이유로 갑자기 사임하셨다. 2018년 사업을 심도 있게 논의한 뒤 2주 만에 일어난 일이라 의아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분이 정식 인사도 없이 사라지듯 기관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난 정부 인사에 대한 정리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이라면 씁쓸한 일이다.


운전 중 우연히 눈에 들어왔던 광고판 문장이 생각난다. ‘무엇이 중헌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놀라운 기술도,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전략도,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적폐청산도, 사람 중심의 결정과 절차가 빠져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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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라는 모토 아래 우리 경제는 선진국을 모방하는 패스트팔로어 전략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전략의 중심에는 1등 주의 경쟁에만 숙달된 대한민국의 엘리트들이 있었다. 그 결과 우리는 10위권 경제 대국이라는 국가 위상을 이룩해냈으며 동시에 40분마다 1명이 자살하는 13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의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지난 1995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주기로 측정한 OECD의 ‘사회통합지수(Social Integration Index)’를 보면 한국은 30개 회원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또 2016년 OECD 34개국을 대상으로 한국경제연구원이 조사한 ‘사회갈등지수(Social Conflict Index)’에서 우리나라는 멕시코·터키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혼자서는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제 더 멀리 가기 위해 같이 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인간 중심의 상호 존중과 합의가 담긴 국가, 사회시스템을 재설계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영 테르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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