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는 여럿일 수 있지만 태양은 하나뿐. 오직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지존’ 자리를 차지하려는 라이벌 열전은 인생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스포츠의 잔인함인 동시에 묘미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무대에서는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한국 팬들이야 ‘평창 맞수’ 하면 스켈레톤의 윤성빈-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의 이상화-고다이라 나오(일본)를 퍼뜩 떠올리겠지만 그뿐 아니다.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은 수성에 나서는 ‘피겨왕자’ 하뉴 유즈루(24·일본)와 도전자인 ‘점프머신’ 네이선 천(19·미국)의 승부가 흥미진진하다. 2014 소치올림픽 챔피언 하뉴는 66년 만의 남자 싱글 2연패를 노린다. 세계선수권 2회 우승(2014·2017년), 2016-2017시즌까지 그랑프리 파이널 4연패 등 화려한 성적을 냈다. 개인 최고점 세계기록(330.43점)도 보유하고 있는 그는 이번 시즌 그랑프리 1차 대회 출전 이후 부상으로 휴식을 취해 몸 상태를 얼마나 끌어올릴 것인지가 관건이다. 네이선 천은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최대 7차례까지 뛰는 등 개인 최고 기록 300점대를 넘기며 대항마로 떠올랐다. 하뉴가 자리를 비운 2017-2018시즌 그랑프리 파이널 타이틀을 거머쥔 네이선은 지난해 2월 강릉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에서 하뉴를 제치고 우승한 좋은 기억도 있다.
피겨 여자 싱글은 러시아 선수들인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19)와 알리나 자기토바(16)의 양강 대결로 압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메드베데바는 지난해 세계선수권 2연패에 성공했고 그해 여자 싱글 역대 최고점(241.31점)을 찍었다. 자기토바는 메드베데바가 이번 시즌 시니어 그랑프리 1·4차 대회 정상에 오른 후 오른쪽 발등 미세 골절 등으로 주춤하는 사이 급성장했다. 자기토바는 지난 21일 유럽선수권에서는 238.24점을 기록, 메드베데바에 5점 이상 앞선 1위에 올라 평창에서의 진검승부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 탓에 메드베데바와 자기토바는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는 가운데 ‘여제’ 린지 본(34)과 ‘요정’ 미케일라 시프린(23ㆍ이상 미국)은 여자 알파인 스키에서 집안싸움을 벌인다. 본은 스피드 위주의 활강과 슈퍼대회전, 시프린은 기술 종목인 회전과 대회전에 각각 강점이 있지만 시프린이 본의 전문영역까지 넘보면서 복합까지 5종목 전관왕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본은 2010 밴쿠버올림픽 활강에서 우승하고 월드컵 여자 최다승(통산 79승)을 기록 중이다. 시프린은 41승. 본이 40승을 돌파한 것은 26세 때였다. 변수는 시프린의 최근 컨디션이다. 29일 스위스에서 열린 회전 월드컵에서 시프린은 2차 시기에 실격했다. 월드컵 회전 연속 우승도 5개 대회에서 멈춰 섰다. 시프린은 최근 월드컵 4개 대회에서 세 차례 실격했고 한 번은 7위에 그쳤다.
남자 스키점프의 ‘인간 새’ 대결에서는 소치 2관왕 카밀 스토흐(31·폴란드)와 그의 아성에 도전하는 리하르트 프라이타크(27·독일)가 쌍벽을 이룬다. 스토흐는 이번 시즌 월드컵 7차 대회까지 2위만 두 차례 기록하다가 막판 2연승하며 평창 전망을 밝혔다. 시즌 초반 3승을 거둔 프라이타크는 월드컵 랭킹 1위, 스토흐는 2위다.
여자 스키점프의 마렌 룬비(24·노르웨이)-다카나시 사라(22·일본)의 대결도 주목해야 한다. 룬비는 최근 월드컵 9개 대회에서 우승 7번, 준우승 2번의 눈부신 성적을 거둬 평창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급부상했다. 월드컵에서 53차례 우승, 남녀 최다 우승 공동 1위 기록을 보유한 다카나시는 오히려 룬비를 추격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다카나시는 우승 1순위로 꼽혔던 소치에서도 4위로 미끄러졌던 아픈 기억이 있다. 올 시즌 최고 성적은 2위. 다카나시가 평창에서 진정한 점프의 여왕으로 날아오를지, 파죽지세의 룬비가 올림픽 금메달마저 삼킬지 팬들의 궁금증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밖에 남자 스키크로스의 소치 금메달리스트인 장 프레데리크 샤피(29·프랑스·세계 2위)와 현 세계 1위 마르크 비쇼프베르거(26·스위스), 남자 아이스하키 양강으로 평가되는 미국과 캐나다 등도 화끈한 맞수 대결로 평창을 달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