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문 안의 첫마을, ‘새문안마을’은 새로운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들어서는 이곳에는 도시의 기억을 켜켜이 담고 있는 오래된 골목길과 집들이 낡음을 덜어내고 말끔한 모습으로 복원돼 있었다. 지난해 임시 준공상태에서 건축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사용된 후 현재는 일부만 전시장과 세미나시설로 개방돼 있다. 올해 하반기 중 정식 오픈을 위한 준비공사가 강추위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철거 대신 보존을 택하다
골목길 무참히 밀어낸 피맛골이 반면교사
전면 재개발 대신 도심재생으로 방향 잡아
강북삼성병원 옆 돈의문 뉴타운 끝자락에 위치한 이 마을은 과거 돈의문을 통해 성안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마주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새문안마을로 불렸다. 서대문의 원래 명칭은 돈의문으로 ‘신문’ ‘새문’으로도 불렸다. (‘신문로’ 역시 여기서 유래한 이름이다.) ‘인의예지’를 품고 있던 고유의 사대문 이름 대신 일제가 편의상 동서남북 방위를 넣은 이름을 쓰면서 돈의문은 그동안 서대문으로 알려졌다. 지난 1915년 전차 복선화를 위해 일제가 헐어낸 돈의문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서대문사거리가 아니라 정동사거리, 즉 새문안마을의 초입이다.
이곳은 돈의문 재개발조합이 서울시에 기부채납 했던 부지다. 재개발 기부채납 용지는 보통은 공원이나 커뮤니티 시설 등으로 조성되기 마련인데 서울시는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고 공원으로 만드는 것보다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면서 문화시설을 넣는 도심재생방식으로 개발방향을 잡았다. 김남형 건축사사무소기오헌 소장은 “이는 역사성 등을 무시한 채 기존 건물을 싹 밀고 새로 짓는 기존의 재개발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반면교사가 피맛골 개발이다. 무참하게 조선시대 역사 유적뿐 아니라 근현대의 삶의 흔적과 기억을 품고 있는 골목길을 밀어버리고 세운 거대한 오피스텔에는 ‘피맛골’이라고 쓴 옹졸한 간판 하나만 달랑 남았다. 돈의문 뉴타운 재개발이 또 다른 피맛골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로 박물관마을 조성이 결정됐다.
■개발바람도 비켜간 ‘도심속 외딴 섬’
일본식 목조부터 70~80년대 스라브까지
서울시내 몇 안남은 주택 역사의 집결지
1960년대 이후 교통사고 전문병원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자리), 문화방송국 정동사원, 서울고등학교 이전 및 경희궁 복원 등 인근 개발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이곳은 개발에서 소외된 섬 같았다. 대신 오래된 단독주택들은 음식점과 카페· 여관·고시원 등으로 바뀌면서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서민들에게 가성비 좋은 먹거리와 잠자리를 제공했다. 토방·미르·한정 등 만원대의 서민 한정식집, 삼겹살 맛집인 제주오름·깡통집,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콩비지를 먹을 수 있는 빨간콩흰콩, 이외에도 문화칼국수·풍미추어탕·돈까스백반 등은 이 일대 직장인들의 단골 식당이었다. LP카페와 커피와쟁이는 풍미와 풍류를 아는 이들이 드나들었으며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와 비스는 정동극장과 함께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였다. 서대문여관은 주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교육을 받으러 지방에서 출장 온 이들이 싸게 머무는 곳이었다. 1935년 유한양행이 창업했던 건물은 1960년대에는 연탄회사인 강원산업의 사옥, 이후 현대제철 서울영업소로 활용됐다. 민현식 기오헌 대표는 “새문안마을은 지난 100여년의 도시적 삶의 물질적·비물질적 유물들이 그득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고 이곳의 건축물들이 털끝 하나 훼손하면 안 될 정도의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일제강점기·근현대 서울의 발전이 중첩된 주택 집결지가 서울 시내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보존의 명분은 넘친다. 1330년대 일본식 목조주택, 1960년대 도시형 한옥, 1970~1980년대 이른바 ‘스라브집’ ‘불란서식집’ 등의 양옥까지 ‘건축가 없는 건축’, 무명의 건축이 집결해 만들어내는 골목길 정서의 가치는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다. 김 소장은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건축에서 집장사 집을 쳐주지 않지만 당시의 가장 보편적인 재료와 공법으로 만든 건축도 아름답지 않느냐는 건축적인 반문”이라고 설명했다.
■도시의 역사 기억하는 마을
건물마다 다른 이력…한채 한채 리모델링
기존건물 최대한 살려 과거 삶 보존 노력
이 같은 도시의 역사와 기억을 켜켜이 간직하고 있는 새문안마을 보존의 원칙은 네 가지였다. 지형, 필지, 골목길, 과거 삶의 형태 등을 보존할 수 있는 리모델링이었다. 최대한 기존 건물을 되살려 내고 더 이상 사용하기 힘든 수준이면 전면 철거 이후 과거 모습대로 복원하거나 전체적인 계획을 고려해 일부는 아예 철거하기도 했다. 건물마다 다른 이력과 상태 때문에 한 채 한 채 리모델링 계획을 세워야 했다.
짧게는 40년, 길게는 70~80년 지난 주택들이라 구조보강과 내진보강 작업이 만만찮았다. 지진에 취약한 조적조 건물은 전담벽을 만들어 철골로 보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현재의 에너지 효율 기준 충족이 가장 까다로웠는데 내부 공간의 가치가 크면 외단열을, 외부의 원형을 보존해야 하면 내단열을 택했다. 창호도 홑겹창은 유지한 채 시스템 창호를 덧댔다. 과거에는 없었던 장애인 노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와 램프 등도 추가했다. 다만 과거에 없었던 시설을 추가할 때는 새것과 옛것이 확연히 구분이 되도록 했다.
그 결과 총 68개동에서 15개동은 전면 철거되고 대수선 10개동, 증축 및 대수선 26개동, 철거 후 개축 2개동, 철거 후 신축 3개동, 한옥 이전 2개동 등 43개동으로 이뤄진 새마을이 탄생했다.
민 대표는 “과거의 것과 새롭게 덧댄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이곳의 풍경을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 감각행위를 통해 (돈의 박물관 마을이) 소외됐던 ‘과거’를 마주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제된 유물 아닌 살아있는 박물관마을로”
사람들 발길 끄는 맛집골목·한옥마을 조성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완성은 건물 리모델링이 아니다.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박물관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이 시대 사람들의 발길이 닿으며 새로운 기억들이 쌓일 수 있도록 하는 운영이 중요하다.
서울시는 사업 초기 큰 방향을 정했다. 이름처럼 박물관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일부 전시시설을 제외하고는 맛집 골목, 한옥마을 등 기존의 쓰임새가 이어질 수 있도록 보존하기로 했다.
마을은 총 4개의 구역으로 이뤄진다. 우선 기존 현대제철 서울영업소(유한양행 본사) 자리에는 서울도시건축센터가 들어선다. 이곳에는 공공건축 통합자료 시스템과 공공건축문화와 역사를 보존하는 플랫폼이 마련된다.
과거 아지오 레스토랑 등 마을 뒷편 6개동에 마련될 돈의문 전시관에는 서울의 도시정비 역사와 시민 주거 변화 및 돈의문마을 형성과정과 변화의 기록을 보존한다. 도시한옥을 개축한 한옥 13채는 한옥체험시설로 활용될 예정이다. 당초 유스호스텔로 계획됐던 한옥마을은 숙박 대신 다도, 예절 교육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나머지 골목에는 음식점, 카페, 먹거리 공방 등이 들어선다. 이곳이 서민 맛집 골목이었던 점을 그대로 되살리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기존의 맛집들이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돈의문 뉴타운에 있던 한옥 두 채도 경희궁과 인접한 부지에 이축된 후 커뮤니티 시설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경찰박물관 및 주차장 이전이 늦어지면서 준공시기도 연기되고 있다. 서울시는 마을 운영 용역업체 선정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 하반기 중에는 일부 시설부터 운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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