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올해의 기업인|젠슨 황, 기술의 지각변동을 선도하다

올해의 기업인 1위 젠슨 황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8년도 1월 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보자. 포춘은 매년 12월 ‘올해의 기업인’을 선정할 때. 제 할 일을 한 CEO들에게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철저한 검토 과정을 거쳐 이익, 매출, 주가의 12개월 및 36개월 연속 증가를 기준으로 기업 순위를 정한다. 거기에 자본이익률 같은 요소들을 포함시켜 평가를 더욱 엄격히 한다(12개월 결과값에 더 많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건 현재 정상에 오른 기업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반면 36개월 결과값을 포함하는 이유는 그저 운 좋은 한 해를 보냈을 수도 있는 기업들을 제외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단순히 수치만 보는 건 아니다. 포춘은 비전을 가진 CEO들에게 더 많이 끌린다. 그들은 자신의 기업을 넘어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들이다. 다음 페이지부터 등장하는 20인의 스타 경영진은 그야말로 기업의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




반도체·소프트웨어 제조회사 엔비디아 Nvidia의 공동 설립자 겸 CEO는 10여 년 전 일찌감치 컴퓨터 기술의 미래를 내다보고, 인공지능 시대를 선도할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런 선견지명과 과감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엔비디아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반도체업체로 성장해있다. 그럼에도 이 회사의 부상은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팰로 앨토 Palo Alto 시내의 북적거리는 그리스 식당 에비아 Evvia(애플 공동설립자 스티브 잡스도 단골이었다)에서 필자와 함께 한 저녁 식사 중반 즈음, 젠 순 Jen-Hsun ‘젠슨’ 황이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려 타투를 보여주었다. 부족 스타일의 굵은 곡선 문신이 어깨 위쪽까지 자리잡고 있었다. 식당의 따뜻하고 은은한 조명 아래 문신 속 검정 잉크가 반짝거렸다.

그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팔을 가리키며 “이 타투를 정말 더 크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로 더 늘리고 싶다. 그런데 정말 아프다. 타투를 새길 때 아기처럼 울었다. 그때 아이들이 같이 있었는데 ‘아빠, 진정 좀 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황의 두 성인 자녀들-스피키지 speakeasy *역주: 미국 금주법 시대에 몰래 술을 팔았던 술집를 재현한 바를 운영하는 스펜서 Spencer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매디슨 Madison-도 타투를 여러 개 새겼다. 반면 두 자녀의 아버지이자 급부상하는 실리콘밸리 반도체·소프트웨어 회사 엔비디아의 공동설립자 겸 CEO인 젠슨 황(54)의 타투는 아직 단 한 개 뿐이다. 그는 약 10년 전, 회사 로고를 추상화한 이미지의 타투를 자신의 몸에 새겼다.

황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엔비디아는 6개월에 한 번씩 사외 워크숍을 갖는다. 한 번은 누군가가 ‘회사 주가가 100 달러가 되면 무엇을 할까’라고 말했는데, 두 가지 의견으로 갈렸다. 하나는 머리를 밀거나 파란 색으로 염색하기, 또는 모히칸 *역주: 머리 윗부분을 닭 벼슬처럼 곧추세우고 옆머리를 미는 헤어스타일 스타일로 자르자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니플 링 nipple ring *역주: 젖꼭지 피어싱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다 직원들이 나를 찾아올 때 쯤 타투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나는 ‘좋다. 난 타투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후 주가가 100 달러를 기록했다.” 그는 잠깐 멈추더니 약간 얼굴을 찡그리며 “그런데 정말 아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포춘 500대 기업의 50세 이상 CEO 중 타투를 한 사람은 거의 없다. 경영 중인 회사 로고를 타투로 사용한 경우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대만 출신의 황은 보통 500대 기업 CEO들과는 다르다. 우선 그는 회사 공동 설립 이후, 24년 간 계속 회사 경영에 참여해온 드문 사례에 속한다. 그는 오리건 주립대 학사와 스탠퍼드 대학교 석사 학위를 보유한 전기 엔지니어다. 직원들을 격려하고, 질문을 던지고, 본인 휴가 중에도 이메일을 보내며 조직을 이끄는 가공할 만한 능력을 보유한 CEO이기도 하다. 많은 업계 인사들에 따르면, 그는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새로운 종류의 컴퓨팅 시장을 예견해 이미 수 년 전 사업 방향을 재조정한 업계의 선구자이다.

탁월한 선견지명과 회사가 올린 눈부신 재정적 성과 덕분에, 황은 2017년 포춘 선정 ‘올해의 기업인’에 아무런 이견 없이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어도비 CEO 샨타누 나라옌 Shantanu Narayen은 “젠슨은 놀라운 선견지명과 과감한 실행력을 겸비한 보기 드문 인물”이라며, “엔비디아가 인공 지능에 집중해 시장을 주도할 기회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맵디 MapD의 CEO 토드 모스택 Todd Mostak도 “젠슨은 제프 베저스, 일론 머스크 급”이라고 평가했다. 맵디는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데이터베이스 회사로 엔비디아가 세 번에 걸쳐 투자를 한 곳이다.

혹시 엔비디아를 잘 모른다고 해도 당신은 용서받을 수 있다. 이 회사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메신저 앱이나 검색 서비스, 기타 관련 기술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대신 그런 모든 기술 개발이 가능하도록 동력을 불어넣는 미스터리한 무언가를 만드는 곳이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이하 GPU)는 매우 복잡한 계산을 고속으로 처리한다. ‘심층신경망’이라 불리는 암호화폐 시장과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시각적 효과들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다. 현실감 있는 슈터 게임 제작에 쓰이는 동일한 기술을 통해, 무인차는 별도 도움 없이 S자 커브를 돌 수 있다. 컴퓨터는 이 기술을 통해 보고, 듣고,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다.

증가하는 제품 수요 덕분에 엔비디아는 성장에 큰 동력을 얻고 있다. 지난 3개 회계연도 동안, 매출은 평균 19% 상승했고 이익은 무려 56%씩 증가했다. 11월 초 엔비디아는 예측 치보다 24% 높은 주당 순이익을 보고해 다시 한번 월가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 최근 4개 분기 동안 이 회사는 매출 90억 달러, 이익 26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황이 이끄는 엔비디아는 투자자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불과 2년 전 30달러 근처였던 주가는 최근 200달러를 돌파했다. 시가총액 약 1,300억 달러를 기록하며 IBM과 맥도널드에 근접하고 있다.

한편 회사는 강력한 라이벌 인텔, AMD 등과의 경쟁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GPU 부문에서 약 70%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두 업체도 GPU라는 신기술 혁명을 통해 수십억 달러의 칩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도시에 설치된 10억 대 이상의 비디오 카메라를 활용해 교통 혼잡부터 주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엔비디아는 도시에 설치된 10억 대 이상의 비디오 카메라를 활용해 교통 혼잡부터 주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제프리스 Jefferies의 주식 애널리스트 마크 리파시스 Mark Lipacis는 지난 7월 고객용으로 작성한 투자 노트에서 ‘IBM은 대형 컴퓨터로 1950년대를 지배했고, 디지털 이큅먼트 Digital Equipment 는 미니 컴퓨터 전환을 통해 1960년대 중반을 장악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PC 시대를 열었고, 애플과 구글은 휴대폰 보급을 통해 시장을 평정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차세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결국은 엔비디아가 최종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CNBC의 <매드 머니> 진행자 짐 크레이머 Jim Cramer도 11월 방송에서 “엔비디아는 동시대 가장 위대한 기업 중 한 곳”이라고 평가했다.

인공지능의 패권 시대를 향해 달려가는 세계 최대 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은 1993년 젠슨 황이 두 친구 크리스 말란차우스키 Chris Malachowsky, 커티스 프리엠 Curtis Priem과 함께 엔비디아를 공동 설립할 때 구상했던 것과는 한참 동 떨어진 것이었다. 당시 말란차우 스키과 프리엠은 선 마이크로시스템스 Sun Microsystems의 엔지니어였고, 황은 새너제이 San Jose에 위치한 칩 제조사 LSI 로직 LSI Logic의 디렉터였다. 두 친구는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기술 개발 방향을 둘러싼 정치적 권력 다툼에서 패배한 뒤, 퇴사를 고려하던 참이었다. 당시 29세에 불과했던 황은 비교적 튼튼한 입지를 갖고 있었다. 세 남자는 황의 집 근처에 있는 식당 데니스 Denny.s에서 만나 차세대 컴퓨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가속화 또는 그래픽 기반의 컴퓨팅이 그것이었다. 황은 저녁 식사를 마칠 때 쯤 LSI를 떠나도 되겠다는 충분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황은 “우리는 이 컴퓨팅 모델이 일반용 컴퓨팅이 근본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비디오 게임이 컴퓨팅이 요구되는 가장 어려운 분야 중 하나가 될 것이며, 동시에 엄청나게 높은 매출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두 가지 요건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다. 비디오 게임은 우리의 킬러 앱이었다. 아울러 대형 시장(방대한 컴퓨팅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막대한 연구개발비 유치가 필요하다)에 진입할 수 있는 플라이휠 *역주: 기계나 엔진의 회전 속도에 안정감을 주기 위해 사용되는 무거운 바퀴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엔비디아는 4만 달러 부채를 안고 출범했다. 처음에는 회사명도 없었다. 황은 “회사 이름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모든 파일에 ‘향후 버전(next version)’의 앞 글자를 딴 NV를 붙였다”고 설명했다. 공동 설립자들은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NV라는 두 글자가 들어간 모든 단어들을 찾다가 ‘부러움’ 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엔비디아 invidia’를 찾아냈다. 그렇게 지금의 회사명이 정해졌다.

초기 직원들은 로런스 Lawrence 고속도로 변에 있는 캘리포니아 서니베일 Sunnyvale로 사무실을 옮겼다. 엔비디아 최초 세일즈맨이자 현재 부사장을 맡고 있는 제프 피셔 Jeff Fisher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탁구대에 모여 점심을 먹고 다른 사무실과 화장실을 같이 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주차장을 같이 쓰던 웰스 파고 은행이 두 세 차례 강도 피해를 입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엔비디아는 1995년 PC용 멀티미디어 카드 NV1를 첫 제품으로 출시했다. 3차원 게임이 막 관심을 받기 시작하던 때였다. 제품 판매는 원활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럼에도 회사는 기술 수정을 거듭해 4가지 제품을 더 출시했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경쟁사 3dfx, ATi, S3에 대응해 매출과 시장의 관심을 늘려나갔다.

피셔는 “엔비디아는 하나의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단순히 교체 가능한 PC 부품을 넘어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단순한 제품을 뛰어 넘는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는 1999년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뒤 기념비적인 금자탑들을 쌓아나갔다. 그 해 세계 최초로 GPU 지포스 GeForce 256을 출시했다. 2006년에는 병렬 컴퓨팅 아키텍처 CUDA를 선보였다. 연구자들은 수 천 개의 GPU를 이용해 극도로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독자 영역에 머물던 칩 기술을 모든 유형의 컴퓨팅에 활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2014년 스마트폰 사업용으로 만든 칩 테그라 Tegra가 반향을 끌어내지 못하자, 이 기술을 다시 수정해 자동차 용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전략에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점이 입증됐다. 엔비디아는 이 기술을 통해 국방, 에너지, 금융, 의료 보건, 제조, 보안 같은 산업에서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엔비디아 게임웍스 GameWorks와 라이트스피드 스튜디오 LightSpeed Studios의 사업 부사장이자,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레브 레바레디언 Rev Lebaredian은 “당시 몇 년 간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 회사 주가를 보라. 당시 세상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인류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컴퓨팅은 너무나도 가치 있는 중요한 기술이다”라고 강조했다.

레바레디언은 “황은 그래픽 기술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과 1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혜안을 갖춘 리더였다”고 평가하며, 시장의 의구심을 수 년 동안 견딜 수 있었던 회사 역량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황은 자율주행차가 어떻게 진화할지, 언제 인공지능이 도래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픽 컴퓨팅이 가진 우수성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회사가 주요 기술 혁명이 가져올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투자를 진행했다. 황은 필자에게 “같은 이야기를 15년 째 해오고 있다”며 “그 동안 PPT 발표 자료를 수정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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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십 명의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샌타 클래라 Santa Clara에 위치한 엔비디아의 대규모 신사옥 앤데버 Endeavor 앞에서 침착하게 개관을 기다리고 있다. 50만 제곱피트(약 1만 4,000평) 규모의 이 구조물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6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애플의 원형 신사옥과는 대조를 이루는 삼각형 형태(컴퓨터 그래픽의 삼각형 블록에서 그 모습을 따왔다)의 유리 건물이다. 엔데버는 마치 기지에 도착한 우주선 머리처럼 샌 토머스 San Tomas 고속도로 위로 치솟아 있다.

비공식적으로 앤데버는 공식 개관 한 달 전 미리 문을 열었다. 2,000명이 넘은 직원들은 트리하우스 tree house *역주: 주로 열대 우림지대에서 살아 있는 나무를 기초로 지은 집 형태의 구조물에 적응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직원들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와 중앙 통로를 통해 위로 올라간다). 직원 및 직원 가족 포함 약 8,000명이 오픈 하우스 문을 통해 앤데버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곳에는 핑거푸드와 음료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페이스 페인팅 아티스트들도 아이들의 급습을 기다리고 있다. 톱밥과 페인트 냄새가 아직 건물 곳곳에 남아있다.

건물 내부에는 삼각형이 넘쳐난다. 바닥 타일, 컴퓨터 화면 가림판, 로비 소파, 창문 스티커, 채광창, 식당 카운터, 심지어 건물을 지탱하는 교차 버팀대마저 모두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앤 데버라는 이름이 표방하는 주제의 연속성에 부합하듯, 건물 내에는 공상 과학을 연상시키는 방들도 빼곡히 들어차있다(알타이르 4 Altair IV, 스카로 Skaro, 스카이넷 Skynet, 보그스피어 Vogsphere, 호스 Hoth, 모르도르 Mordor 등등 *역주: 공상 과학물에 등장하는 행성 이름들이다).

유목민처럼 건물 안을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황은 자신의 집무실을 지키지 않는다. 그는 회의실 곳곳을 작업실로 꾸며놓았다. 포춘이 방문할 당시, 그는 1927년 무성영화의 이름을 딴 회의실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를 임시 거처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의실에선 CEO 황이 보이지 않았다. 클리프바 Clif Bar *역주: 에너지바 이름 박스가 테이블 한 가운데 있고, 설계용 두루마리 청사진들이 의자 위에 가로질러 놓여있었다.


엔비디아가 지난 1월 소비자전자제품 박람회(CES)에서 선보인 자율주행차 전용 인공지능.엔비디아가 지난 1월 소비자전자제품 박람회(CES)에서 선보인 자율주행차 전용 인공지능.



필자가 마침내 황을 발견했을 때, 그는 트레이드 마크인 오토바이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다. 황은 컵에 담겨 나온 빵 가루 입힌 치킨 스틱 한 입을 베어 물었다. 부산한 회사 식당을 활보하는 그의 뒤에는 적어도 스무 명 이상의 직원들과 직원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황의 옆에는 부인 로리 Lori와 아버지를 놀라게 해주기 위해 타이베이와 파리에서 날아온 아들과 딸이 있었다. 이 CEO는 분명 곤경에 처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건물 개관 전에 예정되어 있던 앤 데버의 설계 검토를 마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는 이미 악수와 셀카를 청하는 손님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단 한 명도 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이 직원 가족 네 명과 사진을 찍기 위해 이동하자, 딸 매디슨 Madison이 사진사로 나섰다. 황은 한 쪽 무릎을 꿇고 두 아이들과 키를 맞췄다. 사진 촬영 후 그는 주위 공간을 가리키며 “여러분들이 이 건물을 지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아이 부모들에게 인사를 했다.

오픈 하우스 행사에서 황은 이 같은 사진촬영과 인사, 때론 악수, 허그를 수 백 번 이상 반복할 것이다. 실제로 4시간 동안 그는 딱 한번만 자리에 앉았다. 웃으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 한 소녀와 사진을 찍을 땐(황은 아빠 같은 능숙한 솜씨로 아이를 미소 짓게 만들기도 했다). 그와 인사하려는 인파는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같은 풍경은 수많은 전·현직 엔비디아 직원들이 증언하는 회사의 성공 비법(‘문화’)의 생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1만 1,000명 이상 직원을 보유한 이 상장 기술업체는 놀라울 정도로 끈끈한 유대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소속감은 다수의 장기 근속 직원들에겐 자랑거리이자(사번은 연속 일련번호로 발급되는데 숫자가 낮을수록 근속 기간이 길다는 의미다), 그들이 함께 견뎌온 비즈니스 전쟁의 전리품이다. 이는 또한 공동체 정신과 전략적 연대감을 적극 수용하는 창업자 CEO의 작품이자, 지적 정직성을 통해 최상을 추구하는 그의 핵심 가치관이기도 하다.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의 고위 임원 러네이 하스 Rene Haas는 엔비디아에서 진행되는 6시간짜리 회의들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회사 간부들은 CEO에게 업데이트된 사업 현황을 보고하곤 했다. 그때 황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예컨대 걸림돌이나 목표 달성 실패)이 보고되면, 그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스는 “소프트웨어 책임자든 중간급 엔지니어든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황은 그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회의실에 오게 한 뒤 해당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정상화를 위해 무언가 우선순위와 일정을 재조정해야 했다면, 그는 그 작업을 실시간으로 진행했다. 나머지 회의는 전면 취소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자유로웠다. 그는 결코 축소지향적으로 일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처음에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가 적임자들을 회의실로 불러 들여 절차를 신속하게 촉진시킨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은 “진실을 추구하는 과학적 탐구 정신이 사내 전체에 스며 있다. 그런 문화가 다른 기업들처럼 기업 발전을 가로막는 사내 정치가 나타나지 않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황은 “우리 회사엔 보스가 없다. 프로젝트가 보스”라고 역설했다.

이 엔비디아 CEO는 몇 시간 동안의 인사와 악수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금속테 안경을 벗어 충혈된 눈을 비볐다. 황은 회사 개관 행사의 마지막 참가자가 건물을 떠난 뒤, 부인과 두 자녀가 자리잡고 있는 나무 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행사 요원들이 황 주변의 공간을 청소하며 플라스틱 컵들을 줍고, 걸레질을 하고, 의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경호원들은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황이 필자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원래 하려 했던 질문들(그가 방문객들과 인사하느라 정신 없었을 때 하려 했던 질문)을 지금 하라고 말했다. 필자는 그에게 인공 지능 기술의 차세대 주요 응용

분야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인공지능은 엔비디아 외에도 경쟁업체 인텔과 퀄컴, 그리고 구글과 페이스북, 바이두 Baidu 같은 시장참여자들에게 향후 수십억 달러 기회를 창출해줄 기술이다.

그는 “미래에 있을 아주 놀라운 일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 이야기가 계속되자, 필자의 눈은 기대감에 커졌다. 그는 “미래 기업들은 하루 종일 발생하는 모든 상거래(모든 사업 프로세스)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인공지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이어 인공지능이 “반복되는 특정 상거래나 패턴”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프로세스는 아주 복잡할 것이다. 판매, 공학, 공급망, 물류, 사업 운영, 금융, 고객 서비스 전부를 아우르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계속 발생하는 특정 패턴을 관찰할 수 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해당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또 다른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스스로 만들어낼 것이다. 그 일은 너무 복잡해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쯤 필자의 머리는 영화 오피스 스페이스 Office Space, 매트릭스 The Matrix, 인셉션 Inception이 혼합된 듯한 기이한 상황에 갈 길을 잃은 채 빙빙 돌기 시작했다.

황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지금 우리는 그런 미래의 초기 징후들을 목격하고 있다. 간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 *역주: 대립쌍 구조를 사용하는 생성모델의 개념으로,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대립 과정에서 훈련 타깃을 생성하는 방법을 알도록 학습시키는 구조 을 살펴보자. 향후 몇 년간 신경망(neural network) *역주: 생물학적 신경계 정보처리 네트워크 이 신경망을 자체 개발하는 다수 사례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소프트웨어를 인공지능이 만드는 것은 향후 수십 년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공헌이 될 것이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풀리는 것”이라 고 덧붙였다.

그 순간 플라스틱 컵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이어 ’쿵!‘하고 무언가가 떨어졌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황이 생각의 흐름을 잃고 말을 멈췄다. 저 쪽 와인, 맥주 코너에서 직원 두 명이 팔에 잔뜩 무언가를 얹은 채 남은 술을 불안하게 치우던 참이었다. 그들이 중력을 이겨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 때 황이 정적을 깨며 “아주 훌륭한 맥주가 한 가득 나왔군” 이라고 말했다. 그 공간에 패턴을 감지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충분히 높은 지능을 가진 사람이었더라면 좋았을 듯 싶었다. 황은 키득거리는 가족들에게 화답하듯, 과장된 연기 톤으로 농담을 던졌다. “그 직원이 어색한 자세로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내 지능으로 말이다. 뭔가 일어나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 직원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내 눈은 계속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저렇게 됐다.”

미래를 내다보는 황의 능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해두자.




■ 반도체 강







비디오게임에서 인공지능 자동차까지 모든 제품에 장착되는 엔비디아 고성능 칩의 폭발적 수요 덕분에, 회사의 시장가치가 1,30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 엔비디아의 칩들
경쟁사들을 꺾는데 도움을 줄 3가지 제품들





페가수스 Pegasus ▶ 레벨 5(인간의 개입이 전혀 요구되지 않는 단계)의 완전 자율주행기술을 가능케 할 슈퍼컴퓨터. 2018년 하반기 출시 예정이다.
용도: 자율주행차




지포스 GeForce GTX 1080 Ti ▶ 비디오 게임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엔비디아의 플래그십 그래픽 카드 (700 달러). 360도 게임 스크린 샷을 찍고, 초고해상도 게임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용도: 게임




DGX-1 ▶ 딥러닝 시스템을 구동시키는 상호 연결된 칩들의 빽빽한 군집(뇌와 같은 개념이다).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필요로 하는 인공지능 영역이다.
용도: 딥 러닝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ANDREW NUSCA

ANDREW NUS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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