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내로라하는 한식당들 간에 ‘미슐랭 전쟁’이 불붙었다. ‘미슐랭 스타’라는 이름표만으로도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따내면 매출 증가는 ‘따 놓은 당상’에다 그 식당의 음식 맛, 시설, 서비스 등이 국제적인 공인을 받아 한 단계 품격이 업그레이드되는 결과도 얻는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 사이에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이라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데다 입소문 덕에 레스토랑의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몇 년 전 돈이 안 된다며 특급호텔들이 한식당의 문을 닫고 프렌치 레스토랑 등 서양식 메뉴에 집중하는 동안 서울신라호텔은 고집스럽게 한식당 ‘라연’을 운영해오다 2년 전 미슐랭 스타를 선정하던 첫해 국내 호텔로서는 처음으로 3스타를 받는 쾌거를 이뤘다.
라연은 지난해에도 3스타를 유지해 2년 연속 ‘최고’의 자존심을 지켜온 덕분에 지금은 한 달 전에도 예약이 안 될 정도로 몸값이 높아졌다. 특히 라연의 가격대가 10만~25만원대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자기 자신에게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20대 젊은 층의 유입으로 라연의 고객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졌다. 또 한국을 방문하는 VVIP 외국 비즈니스맨들에게는 꼭 가보고 싶은 명소로 꼽힌다. 신라호텔의 한 관계자는 “맛의 평준화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며 “지난해 전통주와의 컬래버레이션을 강조했는데 좀 더 업그레이드된 ‘마리아주(marriage)’를 추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미슐랭 스타를 따기에는 한식 메뉴가 가장 수월하다. 어쭙잖은 프랑스식 메뉴로는 이미 서양 입맛에 길들여진 미슐랭 암행어사들의 입맛을 잡을 수 없어서라는 얘기가 있다. 미슐랭 스타 선정은 11월에 이뤄지지만 일각에서는 선정 위원들이 3~6월에 집중적으로 다닌다고도 하고 아예 그다음 해 1월부터 무작위로 레스토랑 라운딩을 한다고 해서 업계에서는 시쳇말로 ‘미슐랭 암행이 떴다’는 표현을 쓴다.
올해는 꼭 미슐랭 스타를 거머쥐고 말겠다는 A특급호텔은 이미 1월에 메뉴를 새로 바꿨다. 이 호텔 관계자는 “식음료팀이 아닌 마케팅팀·서비스팀까지 전사적으로 미슐랭 가이드 라인에 맞추기 위해 업그레이드하는 한편 높은 평점을 받기 위한 정보 수집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B특급호텔은 요리, 서비스, 시설, 와인 리스트를 모두 재구성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조만간 ‘미슐랭 태스크포스(TF)팀’도 만든다. 이 호텔은 음식 맛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아예 장류부터 새롭게 바꾸는 한편 식재료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 홀 위주의 서비스를 프라이빗 다이닝룸으로 바꾸는 등 시설적인 부분을 보완하는 한편 냅킨 펴는 방식, 웰컴 드링크 서비스 타임과 방법, 핫 요리 서빙 방법, 요리를 플레이트와의 조화를 통해 가장 아름답게 프레젠테이션하는 방법 등 세세한 ‘서비스 스탠더드 매뉴얼’도 새로 만들었다. 이 호텔 역시 최고경영자(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국내외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을 찾아 벤치마킹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C특급호텔 관계자는 “2016년 첫 회는 준비기간도 짧았고 지난해에는 어떻게 선정되는지를 지켜봤기 때문에 3회차인 올해 만반의 준비를 통해 꼭 스타를 받아내야 한다”며 “호텔 내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있다고 하면 관광객이 호텔과 레스토랑을 선택할 때도 큰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호텔의 위상과 이미지·신뢰도도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 호텔은 ‘와인 리스트’를 새로 준비하고 있다. 와인 종류와 개수, 즉 신대륙과 구대륙 와인이 골고루 분포돼 있고 레드와 화이트 와인이 적절히 잘 구비돼 있는지가 미슐랭 선정 기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호텔, 파인 다이닝 한식당만 목숨을 거는 것은 아니다. 인천국제공항은 제2여객터미널을 새로 오픈하면서 한국인 셰프로는 처음으로 미슐랭 2스타를 받은 임정식 셰프가 총괄디렉터로 나선 한식 브랜드 ‘평화옥’을 유치했다. 공항에서의 식사가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다는 이미지를 깨기 위한 것이다. 임 셰프는 “한국의 입구에서부터 진짜 한식을 만나게 하겠다는 취지”라며 “침체기에 있는 파인 다이닝(정찬 요리) 대신 국밥 같은 대량 생산 방식이 가능한 메뉴로 한식의 본질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슐랭 가이드 고메 페어를 후원한 HDC신라면세점과 현대아이파크몰은 지난해 10월 말 미슐랭 가이드 서울에 등재된 19개의 레스토랑과 셰프가 참여하는 ‘미쉐린 가이드 고메 페어 2017’를 열었다. 라연을 비롯해 라미띠에·리스토란테에오·밍글스·유유안·하모 등 쟁쟁한 스타들이 참여했는데 고객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쉽게 고가의 미슐랭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들을 맛볼 수 있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1회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현대아이파크몰 측은 올해부터 이를 정례화시켜 고메 페스티벌을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먹방’과는 무관해 보이는 현대자동차 제네시스는 올 11월까지 미슐랭 가이드 서울과 마케팅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제네시스는 미슐랭 가이드와의 협업을 통해 고객들의 다양한 미식 생활을 만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스파클링 워터 브랜드 산펠레그리노는 ‘미슐랭 가이드 서울 2018’의 공식 파트너로 이를 후원하면서 세계의 다양한 미식 행사에 참가해 파인 다이닝 문화를 전파하는 이미지를 앞세워 한국 시장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