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뒷북경제] 최저임금 인상 여파에 쑥대밭 된 요양업계

요양기관은 인건비 급증에 폐업 속출

요양보호사, 처우개선비 폐지로 불만 팽배

어르신들은 “요양 비용 부담 커져” 호소

"뾰족한 해결책 없어" 정부 고민 깊어가



최저임금 16.4% 인상 이후 요양업계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요양기관들은 경영난이 심해져 폐업 사례가 속출하고 있고 요양보호사들은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쥐꼬리 임금은 여전하다며 연일 단체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들도 요양 비용 부담이 늘었다고 호소하고 있는 상황.

요양서비스는 초고령화 시대 중추적인 복지이며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국가치매책임제’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런 요양서비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복지 전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 여러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요양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요양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를 나라로부터 받는 구조입니다. 공공성이 강한 복지서비스를 민간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매기면 도움이 꼭 필요하지만 못 받는 사람이 생길 수 있어 국가가 가격을 통제하는 것이죠. 요양기관이 받는 서비스 대가를 ‘수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장기요양수가는 건강보험과 비슷하게 ‘저수가’ 체제로 유지됐습니다. 2008~2017년 최저임금은 연평균 7% 정도 올랐지만 수가는 매년 1~2%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요양기관은 수가로 요양보호사 임금도 지급하고 기관도 운영해야 하는데 수가 자체가 낮게 묶여 있으니 노동자와 경영자 모두 힘들어졌습니다.

고정임 전국요양보호사협회장은 “정부가 장기요양보험이 정부 공공서비스 만족도에서 1위라고 홍보하는데 이런 성과는 업계 종사자들의 눈물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정부가 이런 희생을 제대로 보상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최저임금은 16.4%라는 사상 최대 인상률로 올랐습니다. 정부도 이를 반영해 이번엔 장기요양보험 수가도 많이 올렸습니다. 올해 수가 인상률은 11.3%. 문제는 이 정도 인상률도 오랫동안 저수가 체제가 이어지면서 곪은 문제를 해결하기 역부족이였다는 점.


단적으로 요양기관의 시설 운영비는 지난해보다 줄었습니다. 요양기관은 수가의 일정 비율은 요양보호사 인건비로 써야 하는데 지난해까지 이 비율은 84.3%였습니다. 올해는 86.4%로 올랐습니다. 요양보호사에게 적정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기관은 보호사 인건비를 지급하고 남은 돈을 임대료, 공과금, 유류비, 사회복지사와 경영진 임금 등으로 쓰는데 인건비 지급 비율이 늘어나니 시설 운영비가 쪼그라든 것입니다.

관련기사



장기요양보험 4등급인 어르신 한 명이 한 달간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시설에 돌아가는 금액은 지난해 15만4,700원에서 올해 14만7,700원으로 떨어졌습니다. 더구나 인건비 지급 비율은 지난해 권고 사항에서 강제 사항으로 바뀌어 운영주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이러다 보니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영세 요양기관들이 폐업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전국재가요양기관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이후 최저임금 인상과 이와 연결된 정부 정책으로 폐업한 요양기관이 8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최저임금 인상 결정 직후 일찌감치 문을 닫은 기관도 적지 않고 연합회에 보고되지 않은 폐업 사례도 더 있을 것”이라며 “조만간 기관 운영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기관도 많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 폐업 사례는 여섯 곳보다 많고 앞으로도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요양보호사들도 불만을 제기합니다. 기본 급여와 별개로 받던 수당인 ‘처우개선비’가 폐지됐기 때문입니다. 복지부는 수가와 인건비 지급 비율이 많이 늘었기 때문에 처우개선비가 기본 급여에 녹아 지급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요양보호사들은 급여가 최저임금 인상만큼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엔 한 달 임금 지급명세서에 기본 급여와 별도로 처우개선비가 찍혀서 지급됐지만 앞으로는 기관에서 급여에 처우개선비를 제대로 반영해주기만을 바라야 하는 처지가 됐다는 겁니다.

더구나 인건비 지급 비율 86.4%는 보호사 한 명의 월급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 요양기관 전체 보호사의 1년 임금에 적용됩니다. 어떤 보호사는 지급 비율을 75%로 다른 보호사는 90%를 줘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기관이 말을 잘 듣는 보호사와 그렇지 않은 보호사의 임금에 차별을 두고 ‘길들이기’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요양서비스를 이용하는 어르신들도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요양보험 수가가 크게 오르면서 이용자가 직접 내야 할 ‘본인부담금’ 역시 많이 올랐기 때문입니다. 가령 하루 4시간, 한 달 25일 방문요양을 이용하는 어르신은 월 비용 부담이 4만원 정도 오릅니다. 살림살이가 빠듯한 어르신들은 부담이 크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본인부담금 경감 범위와 수준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막혀 있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합니다. 요양보험 수가를 더 높이는 것입니다. 전국재가요양기관연합회는 적정 인건비와 운영비를 보장하려면 수가 인상률이 14% 이상 돼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가를 더 올리는 것은 재정에 큰 부담을 줍니다. 정부가 뾰족한 해결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입니다.

서민준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