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시린 생

- 고재종作



살얼음 친 고래실 미나리꽝에

청둥오리 떼의 붉은 발들이 내린다


그 발자국마다 살얼음 헤치는

새파란 미나리 줄기를 본다

가슴까지 올라온 장화를 신고

그 미나리를 건지는 여인이 있다

난 그녀에게서 건진 생의 무게가

청둥오리의 발인 양 뜨거운 것이다


꽝꽝 언 겨울 대지에도 살아 있는 것들은 살아서 눈뜨고 있다. 땅속의 알뿌리들과 나뭇가지의 겨울눈들은 종교처럼 봄을 믿고 있다. 얼음천장에 갇힌 물고기들은 아지랑이 사면을 의심치 않고, 청둥오리들은 물갈퀴가 쩍쩍 달라붙는 얼음구들장 위를 걸으면서도 ‘앗 뜨거, 앗 뜨거!’ 뒤뚱거린다. 미나리꽝이 얼어도 미나리들의 혈관은 더욱 푸르고, 미나리를 건지는 여인은 더운 입김을 내뿜는다. 왜 춥지 않겠는가? 저마다의 겨울은 혹독할 것이지만, 지금 시린 사람은 뜨거운 사람이다. 기어이 저를 살리고, 세상에 온기를 더할 것이다. 동장군은 겨우내 얼음주택복권을 긁지만 언제나 당첨되는 건 봄의 주택이다.<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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