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SBS 공채 2기 탤런트로 데뷔해 ‘한지붕 세가족’ ‘바람의 아들’ 등에 출연하며 배우길을 걸어온 이일화는 tvN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근엔 영화 ‘천화’로 24년만에 첫 영화 주인공을 맡았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기에 매순간 첫 걸음을 떼는 어린아이 마음으로 임한다는 27년차 배우 이일화는 “제가 연기를 잘 못해요..그런데 KBS에서 상을 주셨다”며 부끄러워했다. 이일화는 지난해 드라마 ‘김과장’ ‘마녀의 법정’을 통해 탁월한 연기로 ‘2017 KBS 연기대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제 연기가 뭔지 조금 알 것 같은데 상을 받아 받았어요. 감사한 마음이 큰데 아직 멀었죠. 그런 생각을 합니다.”
겸손하게 말을 이어갔지만 그의 연기력은 이미 많은 이들이 인정한다. 특히 tvN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보여준 다채로운 연기와 목소리는 인터뷰 현장의 모습과 180도 달랐다.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바꾸시는 것 같다’는 질문을 건네자, “저 목소리 못 바꿔요. 시청자분들이 관대하게 봐주시는거죠”란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배우가 변신을 한다고 하는데, 전 저에게 들켜요. 우리에게 선과 악의 모습이 다 있고, 소녀 같은 모습, 좀 더 이기적인 악마같은 모습이 다 있어요. 그래서 용서가 되는 것 아닐까요. 캐릭터적으로 분석했을 때 ‘저 목소리가 아닌데’ 란 생각, 거기에 갇혀있음 안 돼요. 자연스러운 연기를 못하게 되니까요. 내가 지적인 여자라도 까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유롭게 도전하려고 해요. 그렇다보니까 시청자분들이 몰입해서 관대하게 봐주시는거죠. ”
“제가 어떻게 100프로 완벽하게 하겠어요. 완벽하게 매 작품마다 변신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을 듯 해요. 완벽할 순 없는데, 90프로를 배우가 하면 마지막 10프로는 시청자들이 품어주는 게 아닐까요.”
‘카멜레온’처럼 변신하고 싶은 마음은 배우들 모두의 소망이다. 또한 풀리지 않는 숙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의 화두는 “어떻게 매번 색다른 인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였다. 고민의 결과는 정갈하게 마음을 비우는 것.
“늘 깨끗하게 나를 비우고 정갈하게 만들어요. 하얀 백지장처럼 만든 다음에, 그 안에 많은 색깔들을 넣으면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벌써 50프로 한 거잖아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노력 중입니다. 인간인지라 스물 스물 ‘교만’이 들어오기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를 반듯이 세우려고 노력합니다. ”
어린 시절 극도로 내성적이었던 이일화는 배우가 된 것에 가장 영향을 미친 인물로 동명의 방송기자를 꼽았다. 본인 이름이 “특이하고 예사로운 이름이 아니다”고 생각했던 소녀 앞에 이일화란 남자 기자가 방송에 나온 것.
“제 이름 뜻이 ‘한 떨기 꽃’인데, 스스로가 제 이름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때론 기생 이름인 것 같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다 화면 속에서 ‘이일화’란 남자 기자가 나오는 걸 봤어요. 아 저분이랑 내 이름이 같다. 막연히 저 분도 같은 이름의 여배우가 화면에 나오면 놀라겠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무의식적인 예언, 계시의 힘을 받아.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그는 광고모델을 거쳐 스물살 때 첫 연극 ‘굿닥터’ 로 배우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꾸준히 연극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2007년 산울림소극장에서 했던 ‘연인들의 유토피아’ 란 연극을 2개월이 넘게 원 캐스트로 서며 많은 걸 깨달았다고 했다.
“나는 인내심과 지구력이 부족한 배우구나란 걸 느꼈어요. 절 돌아볼 수 있는 연극 작업이 너무 좋아서 계속 이어가고 있어요. 연극 ‘루터’도 2월부터 할 예정입니다. 드라마든, 독립영화든 예술영화든 어떤 장르 구분하지 않고 계속 하고 싶어요.”
이일화는 스스로에게 엄격하지만 타인에겐 관대한 배우였다. 그는 “내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상대를 보게 되면 더욱 관대해지고 훨씬 풍성한 삶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부족함을 인지하면서 함께 더불어 맞잡고 걸어가고 싶어요. 결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 저에게 애정을 가져주신 분들의 댓글을 읽고 마음 속으로 감사해하고 있어요. 기쁨, 힘, 에너지가 되거든요. 악플을 써주시는 분들도 있다는 것 알아요. 그 분들도 사정이 있다는 걸 알기에, 악플은 조금만 읽으려고 합니다.(웃음)”
마지막 24년만의 첫 주연작, 민병국 감독의 ‘천화(遷化, A Living Being)‘(제작 맑은시네마 & 키스톤필름)’에 대한 애정도 잊지 않았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영화’와 함께 할 것을 당부한 것.
“우리 영화는 차가운 겨울을 견뎌내며 잎사귀 보다는 꽃잎을 피우는 개나리, 매화, 목련 등을 떠올리게 해요. 그 나무들이 갖는 신비로움처럼, 오래 오래 많은 분들이 아닐지라도 관객 분들의 마음 속에 기억되길 바라고 있어요. 시간을 초월한, 공간을 뛰어넘은 영화 ‘천화’를 사랑해주셨으면 해요.”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