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민규와 만나 MBC ‘로봇이 아니야’(극본 김소로, 연출 정대윤) 종영 인터뷰를 나눴다. 그는 먼저 “전에 했던 작품에 비하면 역할이 주는 책임감이 더 컸다”며 “그만큼 심도 있고 깊이 있게 공부하려고 했고 현장에서도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좋게 봐주셨던 것 같다. 전과 다르게 현장에서 즐길 수 있었다”고 만족스러운 소감을 전했다.
“길게 호흡하는 법을 얻었다. 1부에서 16부까지 인물로서 변화하는 모습을 가까운 배우들부터 멀게는 시청자들까지도 바라봐주시지 않나. 인물로서 어떻게 변해 가는지에 대해 드라마를 통해 처음 배웠다. 너무나 뜻깊고 값진 시간이었다.”
‘로봇이 아니야’는 인간 알러지 때문에 제대로 여자를 사귀어 본 적 없는 남자가 로봇을 연기하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그린 드라마. 김민규는 극 중 로봇개발팀 산타마리아의 해외파 천재 수석연구원 싼입 역을 맡았다. 평소 모습은 좀비 같지만 일만 시작하면 빌 게이츠 버금가는 인물이다.
“오디션을 봤을 때는 열린 대본으로 봤다. 대본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었다. 인물을 즐겁고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는데 관계자분들이 싼입에 맞는다고 봐주셨던 것 같다. 싼입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사람들에게 즐겁게 다가가는 것이다. 진지한 것 보다는 가볍게 상황을 인지하고 자연스럽게 풀어내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즐거운 에너지를 주는 인물이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그런 점을 더 표현하려고 했다.”
김민규는 극 중 같은 산타마리아 팀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은 물론, 남녀주인공인 유승호 채수빈과도 모두 호흡을 맞췄다. 좋은 동료 배우들 덕분에 현장분위기도 무척 좋았다고.
“혹탈(송재룡 분) 선배님과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가깝게 지냈다. 싼입과 혹탈에 앙상블이 있는 것처럼 저희도 굉장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많은 조언을 얻었다. 현장에서도 거의 달라붙어 있었다. 엄기준 선배님은 산타마리아에서 리더였던 것처럼 촬영장에서도 리더였다. 현장 분위기를 늘 부드럽고 자상하게 이끌어주셨던 것이 감사하게 남아있다.”
채수빈과는 벌써 두 번째 만남이다. 지난해 KBS2 ‘드라마 스페셜-우리가 계절이라면’에서 고3 역할로 만난 것. 김민규는 “그때 수빈이는 젊고 청순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여배우로서 갖출 것은 다 갖췄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얼마 안 돼서 로봇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 사이에 굉장히 성숙해졌더라. 특히 배우로서 더 성숙한 모습에 놀랐다. 현장에서 훨씬 더 인내심 있게 버텨내고 즐거운 에너지를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유)승호는 처음 만났는데 정말 선배님 같았다. 실질적으로 연기를 먼저 시작한 선배님이기도 하지만 보이는 모습에서도 동생이 아닌 선배님으로 느껴졌다. 인성도 모범적이다. 보고 배울 점이 많았던 동생이었다.”
‘로봇이 아니야’를, 그리고 싼입을 벗어난 김민규는 어떤 사람일까. 분명 예전의 본인에게는 싼입과 같은 모습이 많았는데 최근 몇 년 동안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조금 힘들어졌다고. 실제로 그와 인터뷰하면서 받은 인상도 가볍고 유쾌하다기보다는 진중하고 차분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오래 생각한 흔적이 느껴졌다. 그가 배우를 결심한 계기는 어땠을까.
“창피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굉장히 갑작스럽게 결심했다. 고3때 짝꿍이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한 이야기가 자극이 됐다. 중학교 때 영화 ‘살인의 추억’을 봤던 기억이 상기되더라. 그때 송강호 선배님이 보여주신 연기에 꽂혔었다. ‘나도 저런 걸 좋아 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연극영화학과에 원서를 내게 됐다.”
그러나 막상 대학교에 입학하니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김민규는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해서 후폭풍을 맞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적어도 1~2년 이상 준비한 학생들과 함께 작업하고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게 굉장히 무겁게 다가왔고 적응하기도 힘들었다고. 그러다 군대에 들어가서 진지하게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얻었다. 이후 자신의 생각과 주변의 조언을 더해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대중에게 비춰지는 스타의 모습을 생각했던 김민규는 군대에 갔다 와서 배우로서 연기의 본질을 생각하게 됐다. 연기의 매력으로 “자신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것”을 꼽은 그는 그 뒤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기를 하기 보다는 스스로 연기를 하면서 느끼는 만족감, 행복감에 집중하게 됐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단편영화, 독립영화 등에도 출연하게 됐다. 그러다 서울에서 열린 영화 워크숍에 참여하게 됐다. 거기서 OCN ‘신의퀴즈’ 시즌4 2화에 민용준이라는 역할에 캐스팅 돼서 드라마를 시작했다.”
지금도 스스로가 느끼는 만족감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주변의 반응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배우로서의 소명감을 느껴가는 과정일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는 과정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단다.
“어머니가 하셨던 말이 가장 기억 남는다. 어느 날 ‘참 자연스럽게 잘 하더라’라고 칭찬해주셨다. 별거 아닌 말 같은데 되게 이상했다. 어머니에게는 제가 아들이지 않나.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사람인데 어떤 점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을까 싶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김민규는 ‘로봇이 아니야’에 이어 곧바로 다음 작품을 만나게 됐다. JTBC에서 ‘으라차차 와이키키’ 후속으로 방송되는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다. 청소 용역업체 일원인 영식으로 등장하는데, 남녀주인공 모두와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김민규는 “싼입이 산타마리아, 민규, 지아와 가깝게 지낸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앙상블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이제 새로 생긴 목표는 우선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를 잘 끝마치는 것. 그는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에서 영식으로서 건강하고 즐겁게 촬영을 마치고 싶은 것이 가까운 목표다. 영식을 통해 또 다른 매력을 찾았으면 좋겠고 보시는 분들도 다른 매력을 느껴주시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조금 더 멀리 봤을 때의 목표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을 꼽았다. 자신에게 배우의 꿈을 새겨 준 송강호처럼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아직은 부족한 점도 있어 누군가를 흉내 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쌓아온 연기 경력을 토대로 온전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꿈이다. 동시에 넘쳐나는 배우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이기거나 돋보이려고 하기 보다는 차근차근 존재감을 다져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제가 대구 사람인데 자주 가는 전망대가 있다. 거기에 서면 대구 시내가 다 보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집, 그 안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기려고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미 좋은 배우들도 많고 수면 위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들도 많다. 그분들과 경쟁을 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다.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나만의 집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