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하루 500건 이상의 청원이 올라온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청원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복합 쇼핑몰도 의무휴업, 진물이 난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그것.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복합 쇼핑몰 규제에 대해 한 소비자단체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청원이다. 지난 1월24일부터 진행된 청원에는 현재 190여명이 동의 의사를 밝혔다. 국민청원 글 작성 후 30일 내에 20만명의 동의를 얻으면 청와대가 공식 답변을 한다. 이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 청원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당정이 추진하고 있는 유통규제에 대해 침묵하던 소비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점이다. 쇼핑몰 의무휴업 등 유통규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당사자인 대형 유통업체다. 하지만 또 다른 피해자는 소비자다. 골목상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 유통규제가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더 값싸고 더 편한 곳을 원하는 것이 소비자이다. 그런 소비자에게 한쪽만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당정이 추진하고 있는 유통규제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골목상권을 선택해야 한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의무휴업 대상을 늘리고 강화한다고 하자. 소비자가 골목상권을 이용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당정에서는 쇼핑몰을 규제하면 소비자가 골목상권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는 진짜 ‘이상’이다. 현재 소비자들은 인터넷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쇼핑을 하고 있다. 클릭만으로 세계의 유명 제품을 너무 편하게 구입하고 있다. 장을 보는 것도 집 안에서 인터넷으로 하는 시대다. 소비자들은 대형 쇼핑몰도 전 세계 쇼핑 선택지의 하나로 보고 있다. 요즘 유통업체들은 급변하는 소비자를 잡기 위해 매장 콘셉트를 바꾸는 등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와 여당 역시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유통규제를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한발 더 나갔다. 골목상권 보호를 넘어 최저임금 인상 보완대책으로 유통규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소상공인 및 영세 중소기업의 최저임금 보완대책으로 복합 쇼핑몰 영업규제 강화를 내세웠다. 유통규제의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 여기에 최저임금 프레임까지 씌운 것이다.
유통규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쏟아내는 각종 규제까지 포함하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공정위는 프랜차이즈 기업의 원가공개까지 추진하고 나선 상태다. 당정은 2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논의하겠다는 계획이다.
경제학 이론에 ‘포획이론(capture theory)’이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규제기관이 피규제기관에 포획당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198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스티글러가 제시한 이론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규제를 해야 하는 정부가 이익집단의 이익을 위한 규제를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일반 개인의 이익은 결국 무시되고 만다. 즉 규제정책은 실제로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쇼핑몰 등 유통시설 규제는 선의의 규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공공의 이익보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측면도 적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 역시 이런 점으로 현재 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유통 업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경우 한 해 최대 3만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이 같은 일자리는 올해 정부가 재정 투입으로 늘리려는 공공 부문 일자리와 맞먹는 수준이다. 유통규제는 일자리는 물론 여러 측면에서 소기의 성과보다 부작용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유통규제가 아닌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ljb@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