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발언대] 암호화폐, 규제보다 제도화가 최우선이다

김익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김익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사진제공=율촌




불행히도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 자체를 뿌리 뽑아야 할 것으로만 인식하는 듯하다. 부처 간 엇박자였다고는 하지만 암호화폐거래소 일괄 폐쇄 법안 논의가 나올 정도다. 법적 근거 없이 시중 은행을 압박해 가상계좌 발급 중단 협조를 끌어낸 일만 보더라도 당국의 조급증을 느낀다.

암호화폐와 이를 뒷받침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허상이 아니다. 당장은 스마트 계약 등을 가능하게 할 혁신적 거래 플랫폼이지만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물론 사람들이 투기 목적으로 암호화폐 거래에 뛰어드는 현실은 문제다. 그러나 암호화폐를 ‘바다이야기(사행성 게임)’처럼 볼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튤립으로 투기판을 벌인다고 튤립을 멸종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정부는 암호화폐를 근절 대상으로 보는 근시안적 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연구도 없이 즉흥적 규제만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은 이미 수년 이상 깊은 연구와 고민을 토대로 조심스럽게 정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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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암호화폐를 지급결제 수단으로 봐야 하는지 같은 추상적 논의조차 본격화하지 못했다. 예컨대 암호화폐의 지급을 원한다면 금전 지급 청구 소송을 걸어야 하는가, 아니면 물건 인도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가. 또 이 소송에서 판결이 나오면 강제집행은 금전과 채권·동산 중 어느 것에 준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처럼 기본적인 물음에도 답할 준비가 안 돼 있다.

암호화폐거래소와 고객들의 법률적 관계도 불분명하다. 해킹 사고가 나면 거래소는 고객에게 암호화폐만 돌려주면 되는지 아니면 시세차익에 따른 손해까지 배상해야 하는지 전문가마다 의견이 갈린다. 특히 거래소가 파산하면 고객들이 특정 물건의 보관을 위탁한 사람이 되는지, 단순 채권자에 불과한지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종전의 법이론으로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암호화폐의 성격에 대한 기초적 판단 없이 올바른 정책은 나올 수 없다. 정부가 말하는 블록체인 혁명도 기대하기 힘들다. 정부는 암호화폐가 허상이 아닌 실재라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암호화폐 연구를 서둘러 법적 지위부터 정립해야 한다. 규제는 그다음 차분하게 마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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