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딸 좀 도와주세요.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하는데 배에 커다란 칼자국을 내서야 되겠습니까. ”
올 가을 결혼을 앞둔 서경희(45·가명) 씨가 모친의 손에 이끌려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을 찾았다. 전북 전주시에 거주하는 서씨는 작년 말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자궁근종을 발견했다. 자궁근종은 여성의 골반에 위치한 생식기관인 자궁평활근 세포의 비정상적인 증식으로 생기는 양성 종양이다. 가임기 여성에서 발생하는 종양 중 가장 흔한 유형으로 평균 30~40대에 많이 발생한다. 최근 한 방송에서는 개그우먼 이은형이 산부인과에 들러 임신과 함께 커진 자궁근종을 보곤 "근종이 커지는 만큼 내 죄책감도 커지더라"며 "근종 때문에 깡총이(아기 태명)가 좁을까봐"라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자궁근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자궁근종의 증상은 무엇이며 최신 치료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 결혼·출산 늦어지는데…난임 부르는 ‘자궁근종’ 30~40대에서 급증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령대별 자궁근종 환자 통계를 보면 2021년 기준 40대가 22만 8029명(37.6%)으로 가장 많았다. 30~40대가 전체 환자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결혼 및 출산 연령이 점점 늦어지면서 임신 전 자궁근종 진단을 받는 환자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다만 자궁근종이 발견됐다고 해서 곧바로 수술하는 것은 아니다. 경민선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증상이 전혀 없고 초음파 검사 중 우연히 자궁근종이 처음 발견된 경우 당장 처치가 필요하지는 않다” 며 “3~6개월 간격으로 추적 관찰하다가 자궁근종이 빨리 자라거나 증상이 너무 심한 경우, 임신에 방해되는 경우, 악성 종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수술적 치료를 고려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자궁근종은 대부분 뚜렷한 증상이 없다. 학계 보고에 따르면 자궁근종이 있는 환자의 20~50% 정도에서만 월경과다증·골반 통증·빈뇨·이상출혈 등의 임상 증상이 발현된다.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작은 크기부터 육안으로도 보이는 커다란 거대 종양까지 자궁근종의 크기는 물론 종양이 발생하는 부위도 천차만별이다. 자궁벽의 위치에 따라 근층내 근종, 장막하 근종, 점막하 근종 등으로 나뉘는데 자궁 내부 점막 아래에 발생하는 ‘점막하 근종’은 다른 유형보다 증상이 더 심할 수 있다. 자궁내막의 두께가 정상이라도 착상을 방해해 임신율을 떨어뜨리거나 유산율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서씨는 “몇년 전까지 결혼 계획이 전혀 없었고 특별한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라 국가에서 지원하는 자궁경부암 외에 산부인과 검진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손가락 막한 크기를 포함해 자궁근종이 10개가 넘는다는 소견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토로했다.
◇ 작은 구멍 3~4개만 내는 로봇수술…흉터 거의 안 남고 통증·출혈도 줄어
20년 전만 해도 자궁근종이 크거나 개수가 많은 경우 자궁 전체를 들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가급적 자궁을 보존한 채 근종만 제거하는 추세다. 자궁의 크기가 임신 12주 크기 이상으로 커져 있거나 골반염·자궁내막증 등 다른 골반질환이 동반된 경우, 근종이 급속히 커져 악성 위험이 높은 경우 등 특이사항이 없는 한 난소는 남겨둔다.
서씨 역시 결혼과 출산을 계획 중인 만큼 자궁근종만 제거하길 원했는데 근종의 크기가 큰 데다 개수가 많다 보니 대다수 병원들이 난색을 표했다. 자궁을 보존한 채 자궁근종 절제술로 진행하더라도 배를 크게 가르고 개복수술로 진행하길 권해 예비신부로서는 적잖이 부담이 됐다고 한다. 결혼식 날짜를 잡아두고 속앓이를 하던 모녀는 ‘자궁근종이 여러 개여도 로봇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더라’는 지인의 말을 들고 수소문 끝에 경 교수를 찾아왔다. 당시 서씨의 모친은 “30대까지 연애에는 도통 관심을 갖지 않고 일에만 빠져 살던 딸이 이제 곧 시집을 간다”며 간절한 목소리로 흉터 없이 수술이 가능할지 물었다. 모녀는 “불과 얼마 전 자궁근종이 30개 넘는 환자도 작은 구멍 4개만 내어 전부 제거했다”는 경 교수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 “의사는 힘들어도 환자에겐 유익” 출산 시 자궁파열 위험 크게 낮춰
기존 개복수술 방식으로 근종절제술을 시행하면 복부 아래 쪽을 크게 절개해야 했다. 경 교수는 고해상도의 3차원 입체영상과 확대 기능 등을 탑재한 최첨단 로봇수술 시스템을 이용해 3~4개의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자궁근종을 제거한다. 관절이 있는 수술기구를 복강 내에서 사람 손목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복강경수술과 비슷하게 작은 절개만으로도 섬세하고 정확하게 복잡한 수술이 가능하다. 수술 흉터가 거의 남지 않을 뿐 아니라 출혈, 통증이 적어 회복이 빠르고 합병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자궁근종절제술에 로봇을 적용하면 가임력 보존에 효과적이다.
다만 집도의 입장에서는 두 시간 넘게 고정된 자세로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수십 개의 자궁근종을 일일이 제거해야 하기에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결코 쉽지 않다. 실제 경 교수는 석회성건염, 목디스크 등 고질병을 달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수술 등 최소침습 수술을 고집하는 건 혹시 모를 합병증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개복수술이 정교하게 이뤄지지 못하면 향후 임신했을 때 자궁이 늘어나 파열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근종세절기를 수백 회 이상 사용한 다음날은 꼼짝없이 몸살로 앓아눕는다”면서도 “로봇수술로 진행하면 배에 큰 흉터를 남기지 않는 것은 물론 자궁 파열 위험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용적 효과 뿐 아니라 안전성 등 모든 측면에서 우수한 로봇수술의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기술 개발과 관련 연구에 힘쓰고 있다”며 “출산 전이라면 더욱 신중하게 자궁근종의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