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거리 스피드스케이팅(빙속)의 간판으로 우뚝 선 차민규(25·동두천시청). 그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빙속 남자 500m 경기 전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하나밖에 없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의 목소리를 들으면 편안해질 것 같았다. 너무 긴장돼서 잠이 안 온다는 동생에게 누나 차윤진씨는 경기와 상관없는 수다로 긴장을 풀어줬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긴 말은 “올림픽에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잖아. 다치지만 말고 잘 타고 와.”
한 번 다치면 크게 다쳐 식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막내는 생애 첫 올림픽에서 다치지 않았고 삐끗하지도 않았다. 은메달이라는 값진 선물을 받아왔다.
지난 19일 늦은 밤 아들의 레이스에 한바탕 감격의 눈물을 쏟고 나온 차민규 가족을 강릉의 한 커피점에서 만났다. 어머니 최옥경씨는 “랭킹 9위로 나갔기 때문에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자기와의 싸움을 이긴 것 같아 대견하다”며 웃었다. 아버지 차성남씨는 “한때 큰 부상 때문에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참…”이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 최씨는 “소치올림픽 앞두고 오른 발목 인대 두 군데가 다 나갔을 때 남편이 가장 많이 울었다. 오늘도 속으로 가장 많이 울었을 것”이라고 했다. 차씨는 “수술을 했는데 1주일 만에 재수술을 해야 했다. 다 나아도 운동능력이 올라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의 얘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런데도 아들은 스케이트를 계속 타겠다고 하더라. 그 의지로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차민규의 식구나 친척 중에 운동을 했던 사람은 차민규 혼자다. 어머니 최씨는 “취미로 스케이트를 시킨 건데 정말 재밌어했다. 근데 장손이라 사실 운동은 부상 위험도 있고 해서 취미로만 시키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세 살 때 계단에서 굴러 얼굴을 70바늘이나 꿰맨 적이 있거든요. 그때 기억도 있고 해서 기회만 되면 ‘그만 타고 공부하자’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끝까지 자기는 스케이트 타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이거 아니면 안 된다고….”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지만 가족이 바라는 것은 한 가지다. 어머니 최씨는 “다른 것은 바라지 않으니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만 운동하면 좋겠다”고 했다. 동생의 경기를 보고 가장 많이 눈물을 흘린 누나는 “안 그래도 의젓한 동생이 더 의젓해 보였다. 좋아하는 일 건강하게 계속하면 좋겠다”고 했다.
/글·사진(강릉)=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