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쇼트트랙 계주의 가장 큰 경계 대상은 상대 팀이 아니다.
2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선. 4분07초361의 기록으로 중국에 간발의 차로 앞서 1위로 들어온 한국 선수들은 대형 태극기를 나눠 들고 링크를 돌면서도 천장의 전광판을 힐끔 살폈다. 아직 기록이 나오지 않은 상황. 얼마 뒤 중국·캐나다의 실격과 함께 한국의 1위가 확정되자 한국의 ‘여(女)벤저스’는 다시 한번 환호했다. 최민정(20·성남시청)이 개인 1,500m에 이어 2관왕에 오른 가운데 소치 멤버인 심석희(21·한국체대)와 김아랑(23·고양시청)은 2회 연속 올림픽 계주 금메달을 따냈다. 결선은 뛰지 않았지만 예선에서 힘을 보탠 이유빈(17·서현고)도 금메달을 받았다. 상대 팀이 문제가 아니라 실격만 아니면 우승이라는 공식이 다시 확인됐다.
7전6승. 한국 여자 계주는 처음 출전한 1994릴레함메르대회부터 2006토리노대회까지 올림픽 4연패를 이뤘고 2010밴쿠버대회 실격 이후 다시 올림픽 2연패에 성공했다. 밴쿠버 때도 가장 먼저 골인했는데 석연찮은 판정 탓에 실격 처리되는 바람에 중국에 금메달을 내줬다.
이날 한국은 예선 때처럼 또 넘어져 가슴 철렁한 순간을 맞았다. 그러나 결과는 예선과 마찬가지였다. 전체 27바퀴 중 6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김아랑이 혼자 2바퀴 가까이 돌며 승부수를 띄운 상황. 김아랑은 그러나 4바퀴를 남기고 김예진(한국체대 입학 예정)을 밀어주는 과정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터치를 받은 김예진이 정상적으로 레이스를 펼쳤으나 이때 캐나다와 이탈리아 선수가 넘어졌다. 이제 승부는 중국과의 2파전. 내내 뒤에서 기회를 엿보다 3바퀴를 남기고 선두로 나선 한국은 최종 주자 최민정이 중국의 거센 추격을 따돌리고 가장 먼저 들어왔다. 중국의 마지막 주자 판커신이 손을 써봤지만 최민정은 밀리지 않았다.
관심은 캐나다·이탈리아가 넘어질 때 김아랑이 방해했는지 여부. 비디오 판독 결과 캐나다와 중국이 페널티를 받았고 한국 금, 이탈리아 은, 순위결정전인 파이널B 1위를 차지한 네덜란드에 행운의 동메달이 돌아갔다. 중국은 판커신이 최민정을 밀친 동작이, 캐나다는 최민정·판커신의 결승선 통과 직전 킴 부탱의 진로방해가 지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후 환희의 눈물을 가장 많이 흘린 사람은 맏언니 김아랑이었다. 김아랑은 1년 전 동계체전 중 다른 선수의 스케이트 날에 뺨을 베어 심리적인 충격이 여전하다. 그는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동생들과 금메달을 합작했다. 이날 최민정이 치고 나가는 대표팀의 중반 작전이 잘 먹혀들지 않으면서 순간 위기를 맞았는데 김아랑이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김아랑은 “그동안 훈련한 것, 고생한 것, 힘들었던 것이 생각났고 애들이 기특하고 저 자신한테도 수고했다는 의미로 눈물이 자꾸 났다”고 했다. 대회 전 코치의 폭행에 상처가 깊었던 심석희도 500m 결선 좌절과 1,500m 예선 실수를 딛고 비로소 활짝 웃었다. 막판 스퍼트로 큰 공을 세운 심석희는 “계주 경기를 하기까지 많이 힘든 부분도 있었다. 많은 분의 응원에 느낀 부분이 컸다”고 말했다. 최민정은 “저 혼자 딴 게 아니라서 두 번째 금메달은 기쁨 다섯 배”라며 웃었다.
이날 쇼트트랙의 완벽한 팀워크와 끈끈한 우정은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팀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팀추월 팀의 김보름은 전날 경기에서 뒤에 처진 노선영을 챙기지 못했고 경기 후 노선영을 탓하는 듯한 인터뷰 태도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노선영은 20일 밤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팀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았고 (팀원들과) 대화도 없었다”고 말했다. /강릉=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