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폭죽 사라진 베이징 춘제

홍병문 베이징특파원

홍병문 특파원




중국인이 가장 기다리는 명절을 꼽으라면 단연 춘제(설날)다.


일주일에 달하는 휴일 기간에 두둑한 세뱃돈 홍바오도 챙길 수 있다. 오랜만에 고향 친지와 부모를 만나 따뜻한 사랑과 정을 느낄 수 있고 새해를 설계하며 기대와 희망을 품게 한다는 점에서 명절 이상의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단순한 명절 이상의 상징을 지닌 춘제도 이제는 그 의미가 조금씩 퇴색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어느덧 자취를 감춰버린 폭죽놀이에서 찾을 수 있다.

매년 춘제 연휴 시작 일주일 전부터 베이징 시내를 들썩이게 했던 폭죽이 올해는 당국이 베이징 도심 5환 이내에서 폭죽 사용을 금지하자 사실상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 춘제 연휴 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베이징시 당국의 폭죽 금지 공고가 전해질 때만 해도 춘제의 상징인 폭죽놀이를 중국인들이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엄격한 통제사회 중국의 현실을 무시한 섣부른 예단이었다.

악귀를 쫓고 복을 가져온다는 믿음 때문에 춘제 기간 중국인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폭죽 문화는 이제 적어도 베이징에서만큼은 추억거리로 전락할 조짐이다. 스모그로 고생하는 베이징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국 당국의 고충도 이해는 가지만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오랜 중국 전통의 춘제 폭죽 문화 자체를 금지해버리는 중국 지도부의 발상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 요란스럽게 터뜨리던 폭죽을 당국의 지시라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포기한 중국 베이징인들의 모습이다. 베이징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20년 가까이 중국에 거주하며 토박이 베이징인이 다된 한 현지 교민은 철저하게 당국의 통제에 길들여진 중국인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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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또 다른 풍경 중 하나는 춘제 기간 중국 인구의 절반인 7억명 이상이 본다는 국영 중국중앙(CC)TV의 설 특집 연예 프로그램 ‘춘완’이다. 설 전날 오후8시부터 4시간 넘게 진행되는 버라이어티 쇼에 최근 몇 년간 애국심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 올해는 지난가을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공산당 당장에 포함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은연중에 선전하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두드러졌다.

무대에 오른 가수와 배우들은 연신 신시대 사회주의를 외쳐댔고 신시대 중국을 주제로 한 노래와 쇼도 줄을 이었다. 애국주의와 중국 우월주의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네티즌들은 신년 버라이어티 쇼가 시진핑 우상화와 정부 선전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비판 글을 SNS에 남겼다.

일부 매체와 외신은 이번 ‘춘완’에서 무대에 오른 단막극 ‘동희동락’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지난해 아프리카 나이로비-몸바사에 개통한 철로를 소재로 한 이 단막극에는 중국의 유명 여배우가 흑인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지나치게 우스꽝스러운 옷과 원시 복장의 아프리카 현지인 차림을 한 출연진을 등장시킨 이 프로그램은 아프리카를 ‘구원자’ 중국의 원조가 필요한 낙후 지역으로 단순 묘사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특정 민족과 인종 차별 의도는 없었다며 애써 이 극을 옹호하는 글을 내놓았지만 신시대 사회주의와 ‘중국몽’으로 표현되는 애국주의 프로그램들이 중국 우월주의와 국수주의·군사주의 의도를 깔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을 감출 수 없다.

중국 당국은 춘제 연휴 기간 3개년 빈곤퇴치 정책을 발표하며 국경의 낙후 지역을 개발하겠다고 선전해댔지만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같은 중화권 매체들은 그 이면에 소수민족 통제와 감시 강화가 깔려 있다는 날 선 비판을 내놓았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인권운동가 류사오보의 죽음에는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중국 지식인들과 당국의 한마디 지시에 하루아침에 폭죽 문화마저 선뜻 포기하는 중국인의 태도는 다시 한번 중국식 전체주의의 위력을 절감하게 한다. 달라진 춘제 풍경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hbm@sedaily.com

홍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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