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단독] "中철강, 한국 통해 얼마나 오는지 보겠다"...美, FTA협상서 원산지 기준 강화 요구

4~6단위 세번변경 강화 요청

車 등 철강 중간재 공산품들

우회 수출 문제 '족쇄' 될수도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 철강 품목의 원산지 기준 강화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가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환적(transhipment)’ 거점 역할을 하는지 정밀하게 들여다보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철강의 원산지 기준이 강화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 등 철강을 중간재로 하는 우리 공산품의 우회수출까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22일 복수의 통상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올해 초 두 차례 열린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현재 4~6단위 세번변경 기준으로 돼 있는 철강 제품의 원산지 규정 강화를 요구했다.


원산지 규정이란 FTA에서 특혜관세 혜택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교역상품의 국적을 판별하는 기준이다. 한미 FTA는 HS코드의 세번변경 여부를 따지는 ‘세번변경 기준’과 역내산 부품을 얼마나 쓰는지를 통해 판별하는 ‘부가가치 기준’, 그리고 섬유 등에서 특정 가공과정을 거쳤는지 따지는 ‘가공공정 기준’ 등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현행 4~6단위로 돼 있는 철강 및 철강 제품의 세번변경 기준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입한 열연강판(HS코드 7208)으로 냉연강판(7209)을 만드는 경우 현행 협정문상 4단위 세번변경 기준(CTH)이 적용돼 역내산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요구대로 이 기준이 2단위(CC)로 강화되면 역내 물품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6단위 세번변경 기준(CTSH)을 적용받는 품목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미국의 요구는 일차적으로 중국산 철강이 얼마나 한국을 통해 미국에 들어오는지 정밀하게 보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2016년 기준 우리나라는 중국으로부터 철강 1,422만톤을 들여온 수입 1위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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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미국 측의 진의를 파악하고 있다. 철강 제품의 경우 이미 양국 모두 무관세로 교역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원산지 기준이 강화돼도 우리나라 철강의 대미 수출을 줄이는 데 큰 효과가 없다. 통상당국의 한 실무 관계자는 “원산지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관세가 올라가는 게 아닌데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철강 원산지 기준을 강화하면 미국이 자동차 등 철강을 재료로 하는 우리 공산품의 수출을 막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행 한미 FTA에서 자동차의 역내산 인정 부가가치 비율은 35%. 중간재로 쓰이는 철강 제품의 원산지가 중국으로 판별되면 수치를 간당간당 맞추고 있는 완성차 업체의 대미 수출에도 비상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우리 입장에서는 차를 만들 때 한국산 철강을 썼다고 했는데 기준이 강화되면 그게 아니게 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라며 “철강 자체는 수출에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미국이 공산품의 우회수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되면서 훨씬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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