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흙수저로 좌절하고 원망도 많았지만 불평하고 멈춰서는 대신 ‘잡초정신’으로 이겨냈습니다.”
고등학교 자퇴 후 자동차 정비공을 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를 따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후과정(Post-Doc·포닥)을 밟는 오태현(31) 박사는 ‘학위수여식’을 하루 앞둔 22일 만감이 교차하는 듯 지난 시기를 되돌아봤다.
그는 어려서 할아버지·할머니 밑에서 크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외가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그는 “당시까지 한글도 떼지 못했고 중학생 때도 중간 성적에 그쳤다”며 “다행히 전산실에서 선생님 심부름을 하며 컴퓨터에 재미를 느꼈다”고 술회했다. IMF 외환위기가 닥치고 어머니가 실직하자 그는 빠른 취업을 위해 전산계통 특성화고에 진학한다. 하지만 타지에서 시작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스트레스가 심해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났는데 어머니가 ‘정말 힘들면 다른 길을 찾아봐도 된다. 넌 잘할 것’이라고 격려해주셨다”며 “1년여 만에 자퇴한 뒤 자동차 정비소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그는 “추운 겨울에 일도 너무 고되고 교복 입은 학생을 보면 괜히 우울했다”며 “어떤 손님은 자녀에게 ‘공부 안 하면 너도 저렇게 된다’고 해 큰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결의를 다지고 지난 2004년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 수능시험을 봤으나 하위권에 그쳤다. 좌절과 번민을 거듭하다가 ‘내가 남 탓하고 불평하는 것 외에 무엇을 했나, 언제 최선을 다해봤는가’라고 자문하게 됐고 마음을 다잡아 이듬해 광운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했다. 그는 “학비는 장학금으로 충당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공부했더니 4.5만점에 4.43의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해 KAIST와 인연을 맺게 됐다”며 뿌듯해했다.
쌍둥이 석사·남매 박사도 눈길
권오현 회장은 명예박사 받아
KAIST 오늘 2,736명 졸업식
KAIST 홈페이지를 통해 랩을 일일이 살펴본 그는 전기및전자공학과 권인소 교수의 문을 두드렸고 7년간 석·박사를 하게 된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해외 연구자를 찾아다녀 2014년 중국 베이징의 마이크로소프트(MS) 지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밤새듯 일해 논문을 완성하기도 했다. 이런 악바리 정신으로 그는 교내 연구실적 평가 최우수상, 삼성 휴먼테크 논문대상 금상 등을 차지했다. 현재는 MIT에서 기계가 인간 상식선까지 학습할 수 있는 핵심 엔진을 만들고 싶은 꿈을 꾸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카메라·스캐너 등으로 입력한 영상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컴퓨터 비전을 연구하는데 100군데 가까이 포닥을 신청해 MIT에 들어갔다”며 “늘 믿음을 보내주신 어머니와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만들어준 지도교수께 보은하기 위해서라도 교수가 돼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23일 열리는 KAIST 학위수여식에는 기계공학과 생명화학공학을 전공한 쌍둥이 형제(박광석·박정석)가 나란히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누나(김민주·문화기술대학원)와 석사 동생(김영일·우주탐사공학학제전공)도 졸업장을 손에 쥔다. 기업인으로는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겸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이 동문 최초로 모교에서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올해는 박사 644명, 석사 1,352명, 학사 740명 등 2,736명이 학위를 받는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